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블로그] 한국의 40대 여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 송진화 작가

등록 2008-04-25 16:14수정 2008-05-04 16:37

보드카 술병을 활용한 작품들. 시간 날때마다 하나씩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소줏병으로 하다가 보드카로 바꿨다. 병이 예뻐서 한 배낭 얻어와서 만들었다.ⓒ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보드카 술병을 활용한 작품들. 시간 날때마다 하나씩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소줏병으로 하다가 보드카로 바꿨다. 병이 예뻐서 한 배낭 얻어와서 만들었다.ⓒ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버려지는 것을 매만져 생명을 부여하는 게 재밌어요.” 옛 아파트 관리실을 개조한 조각가 송진화(46)씨의 작업실. 기둥나무, 판재, 각목 등 원재료와 바이스, 전기톱, 그라인더, 망치, 조각칼 등 조각도구와 수북한 톱밥이 거의 전부다. 작품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살펴야 보인다.

술 취한 여인의 받침대가 된 깨진 보드카 병, 게으른 남성으로 변한 등나무 가지, 푸근한 멧방석이 된 화목, 여인이 얼어죽은 연못이 된 나무토막, 뱀으로 변신한 죽은 분재 등. 그의 작품들은 쓰레기와 한끝 차이지만 본래 무엇이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나무를 끌고 다니는 게 남세스러워 어스름에 주워왔어요. 요즘은 지인을 통해 홍릉수목원, 당진 등에서 폐목을 얻어쓰고 있어요.”   작가의 손끝에서 외양을 부여받은 나무토막은 주로 여인상이다. 가슴 한가득 못 박힌, 칼을 문 채 도끼눈을 한, 강아지 품에 안겨 눈물콧물 흘리는, 강물에 막 뛰어들려는, 춤바람이 난, 속곳이 보이도록 치마를 훌렁 걷어올린…. 도무지 제 정신인 것은 하나도 없다.  

작가는 재료에 최소한으로 손 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휘어진 나무는 허리를 구부리거나 젠 체 가슴을 내민 여인이 되고, 옹이박이 나무는 화상입은 여인의 얼굴로 바뀐다. “나무를 보면 나무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생각해요.” 나무조각들이 작가한테 여성의 한을 얘기하는 셈이다. 하지만 결국 감정이입 아니겠는가.  

미대 졸업 직후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입시화실을 열어 13년동안 먹고 사느라 정신 없었다. 그러다 2000년에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낼 모래가 마흔인데 내가 왜 이렇게 살지?” 작품 활동은 이러한 고민과 함께 시작됐다. 두 차례 전시를 했지만 그다지 눈길을 끌지 못했다. 2007년 설총식씨와의 2인전 ‘그여자 그남자의 사정’(잔다리 갤러리)에서 40대 여인의 한을 풀어낸 뒤 비로소 작가로 자리 잡았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해 ‘신선한 작가’로 좋은 대접을 받았다.  

“결혼이 불행했느냐“는 물음에 ”작품과 크게 상관없다”고 말하고 “아무런 생각없이 자르고 깎고 다듬는 단순작업이 행복하다”며 웃었다.   “나뭇결을 따라서 모양을 드러내는 과정이 무척 재미있어요.” 동양화를 전공한 그 준비과정이 길고 힘들어 중간에 창작욕이 사그라드는 것과 달리 나무조각은 할수록 흥미있다고 말했다. 무엇이 될까 궁금해서 밤을 새는 때가 종종 있다는 전언.  

작품 속 여인들은 한결같이 맨 발. 등산화를 신켜야 하는 세상인데 맨발로 견뎌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담았다. 역시 단골손님인 커다란 강아지 품에 안긴 여인의 퉁퉁 부은 눈처럼 보는 이의 속을 후벼판다.  

“요즘 경매사 충고를 받아 작품이 매끈해졌다”는 그는 “투박하고 털털한 작품을 한두 점씩 해야 속시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실 한켠에 놓인, 박수근의 여인을 닮은 첫 작품을 비매품이라며 눈인사를 시켰다.  


화랑 행에 앞서 작중 여인들은 부지런히 연습을 한다. 평균대 위에서 위태위태 균형을 잡거나, 밑빠진 두레박에 앉아 노를 젓거나. 재활용이나 작중여인들이나 40대 한국여인의 현실 아닌가.  

개인전은 UNC갤러리(02-733-2798)에서 23일부터 5월14일까지 열린다.

다음은 전시장의 작품들.

보드카 술병을 활용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보드카 술병을 활용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술에 취한 듯 덩실덩실 춤을 춘다. 하지만 발끝은 날까롭게 깨진 유리를 밟고 있어 몹시 위태롭다.

화목을 이용한 맷방석.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화목을 이용한 맷방석.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그 위에 박히듯 누워있는 여성. 아마 푹신한 곳에 누워 한없이 쉬고싶은 심정을 표현한 것 같다. 왜 있잖은가. 몸이 천근만근 가라앉는 느낌.

입구의 유리창 안쪽에 걸린 작품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입구의 유리창 안쪽에 걸린 작품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밖에서 보면 벌렁 들린 치마 사이로 속옷이 보인다. 작가는 일종의 삐끼라며 낄낄 웃었다. 사실 더 쇼킹한 것이 있다. 입구를 들어가며 방명록이 있는데, 붓펜이 물구나무선 여성의 두 다리 사이에 끼워져 있다. 서명을 위해 펜을 집어들기보다 서명을 하고 도로 놓는 게 여간 민망하지 않다. 작가가 몹시 심술궂다.

속이 썩은. 가슴에 칼이 꽂힌, 가슴이 뻥 뚫린, 가슴에 못박힌 등등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속이 썩은. 가슴에 칼이 꽂힌, 가슴이 뻥 뚫린, 가슴에 못박힌 등등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40대 여성이면 대부분 그러리라. 술통에 빠진 남편에다 놀기만 하는 아이들, 해도해도 메워지지 않는 적자 가계부 등등.

그래도 독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느냐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그래도 독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느냐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칼을 입에 물고 산다면 못 견딜 게 있겠는가.

눈물 콧물 흘리면서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눈물 콧물 흘리면서 ⓒ 한겨레 블로그 꿈꾸는달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