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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슬픔 농담같은 ‘고선웅표 연극’

등록 2008-05-01 21:10

강철왕
강철왕
[리뷰] 강철왕
고선웅은 특별한 입담을 가졌다. 사소한 일로 목숨 거는 현대인을 묘사했던 초기작 <락희맨쇼>부터 엄숙한 궁중을 섹스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마리화나>에 이르기까지, 명분이나 고상함을 강조하는 작가라면 스스로 검열하고 배제했을 이야기와 스타일을 초지일관 구사하는 재능과 뚝심을 가졌다.

이번에 선보인 신작 <강철왕> 역시 전작들의 계보를 잇는다.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이 스테인레스맨이 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그것도 비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삼은 불균형 속에 종횡무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장난스러운 수면의 아래에서 절망하는 작가의 목소리, 가족과 사회와 국가의 폭력에 지친 현대인의 비애가 묻어난다.

작품은 무용수를 꿈꾸지만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열처리 공장의 최고경영자가 되는 청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아버지는 공장을 자동설비시스템으로 바꾸며 노동자들을 해고하려 하고, 노동자들은 이에 반발하면서 청년을 납치해 열처리 기계 안에 가두고 그 과정에서 청년이 스테인레스맨이 된다는 설정이다. 결국 가부장주의나 집단주의 또 기계문명이 준 스트레스 가열 상태로 자유를 꿈꾸던 한 인간이 망가진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주제의식 탓인지 일견 표현주의 연극을 보는 듯한 강렬함도 존재한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연습실을 개조한 마방진극공작소. 아직 워크숍 수준의 공연이라 거칠음이나 과잉 상태가 역력했지만, 개연성에 구애받지 않는 극작술이나 모든 것을 뒤섞는 공연의 형식미는 힘이 있었다. 특히 작품의 주된 이야기가 부자의 갈등과 열처리 공장으로 모아져서인지 이 작품은 남성적 가부장주의와 싸우면서도 기묘할 정도로 남성적이다. 근육으로 다져진 남자배우들의 격한 움직임들, 검도복류의 의상, 냉소적이고 폭력적인 대화, 멈춰 있지 않고 분주하게 무대를 맴도는 특이한 동작선-덕분에 상당 부분의 대사가 들리지 않지만- 등등.

마치 나이 들기를 거부한 악동처럼 작품을 쓰고 연출한 고선웅은 하위문화에서 차출했을 법한 거친 스타일과 에너지를 무대 위에 폭죽처럼 쏟아낸다. 그러나 그 과잉의 에너지와 달리 작품이 정작 전달하려는 주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스트레스에 생을 체념하는 자조와 쓸쓸함이다(피터팬 같은 그도 지쳤는가).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우리를 잠식하는 이 거대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피도 눈물도 없는 강철왕 되기.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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