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융 회고전
한국 현대판화의 개척자 배융(1928~1992)의 회고전이 27일까지 서울 통의동 진화랑(02-738-7570)에서 열린다. 판화뿐만 아니라 수묵화, 유화 등도 함께 전시한다.
배융은 1958년부터 69년까지 미국공보원 홍보실에서 근무하면서 실크스크린 기법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몇몇 작가들에 의해 전통적인 목판화만 제작되던 때에 그가 소개한 실크스크린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현대판화의 출범을 알린 ‘5인 판화 초대전’(1963),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립(1968) 등의 중심에 배융이 있었다. 그는 도쿄, 부에노스 아이레스, 밀라노 등 국제판화전에 참여하면서 판화가의 자리를 굳혔다.
그의 초기작은 디자인 성격이 강하다. 그가 그래픽 디자이너였기 때문. 전통 문양과 현대 이미지가 공존하지만 아무래도 술잔, 여배우, 문자, 기호 등 현대 이미지에 강조점이 놓인다. 1964년 뉴욕에서 연수하며 팝아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1974년 미국으로 이민 간 뒤 한국에서와 달리 판화는 물론 회화를 아울렀다. 하지만 즐겨 다루는 소재는 되레 한국적인 것이었다. 수묵과 한지를 이용한 <거북이 노래> 연작이 그렇고, <해양가> 연작은 암각화, 만(卍)자 등 옛 한국 문양에서 소재를 취했다. 거북 연작에서 보이는 반복된 수묵 반원은 남해 다도해, 고국 산야, 또는 무덤들을 연상케 한다. 또 축축한 한지에 먹을 번지게 한 뒤 선 또는 면으로 긁어 자국을 낸 작품은 무척 사색적이다.
1992년 췌장암으로 타계하기 4년 전부터 그의 작품에는 수도승의 옆모습과 말을 탄 구도여행자의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자기고백이 아닌가 추측한다.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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