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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30년 만에 다시 묻는 ‘정의란?’

등록 2008-05-22 19:22

연극 ‘쿠크 박사의 정원’
어리둥절하다. 보수주의로 회귀한 ‘엠비의 시대’에 사회극이라 칭할 만한 작품들이 서울연극제에 떼지어 나타났다. 위안부의 상처를 다룬 <특급호텔>, 폴란드의 역사를 한국으로 치환한 <두드리두드리>, 외환위기 이후로 증가 일로인 가난과 비인간화된 대한민국의 살풍경을 표현한 <나, 여기 있어> 등 그동안 가벼움에 취해 있던 연극이 갑자기 비판적 논객으로 변신하였다.

아마 지난 십년간 제 길을 찾지 못했던 진보와 물신주의의 팽배에 침묵하던 스스로에게 진력이 나기도 하였을 것이다. 혹은 보수화된 현실 정치를 만나자 물 만난 고기처럼 연극 고유의 반골 정신을 회복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객석에서 연극을 보는 느낌이 오랜만에 묵직하다.

그중 정의에 대해 물어보는 <쿠크 박사의 정원>은 유신시대에 초연되었던 전력이 있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음미하는 특별한 감흥을 준다. 금기로 숨도 쉬기 힘들었던 시절에 번역극을 통해서라도 정의에 대해 외치고 싶었던 유신시대의 양심과, 금기가 몽땅 사라지면서 이제 무엇이 정의인지 도대체 알 수 없어진 이 시대에 대해 성찰하기. 작품은 미국의 시골 마을을 공간 삼아, 그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쿠크 박사(이호재 연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모든 것이 정돈된 쿠크 박사의 정원처럼 마을 역시 불구자나 악당이 없는 완벽한 공간이다. 그러나 완벽함이라니? 인간들의 마을에서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작가 아이라 레빈은 쿠크 박사의 보호 아래 성장한 청년 의사(김수현 연기)를 내세워 완벽함으로 살균 처리된 마을과 쿠크 박사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그 과정에서 젊음과 노회한 늙음의 연기 대결이 볼만하다.

작품이 스릴러 구조를 취하다 보니, 영화를 통해 현란하게 발전해 온 스릴러물에 익숙한 현대 관객으로선 과거의 <쿠크 박사의 정원>이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란한 잔재주 없이 단도직입으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 선과 악에 대해 물어보는 작품의 주제의식은 삼십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저널리즘 비평에 헌신했던 구히서 선생이 번역했고, 선생의 칠순 기념으로 연극인들이 헌정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마침 축하연이 있던 첫날에는 연극계의 다양한 인사들이 극장에 모여들었고, 경향이나 취향이 다른 연극인들이 뒤섞인 객석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질서에 위배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쿠크 박사의 정원과 달리 개성이 다른 꽃과 나무들이 구히서의 정원에서는 오랫동안 공존해 온 듯한 느낌. 선생님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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