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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연우무대의 순항을 기대하며

등록 2008-06-12 18:45

연극 ‘해무’
짙은 안개 속에 배 한 척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문제작으로 입증받았던 연우무대의 <해무>가 그 주인공.

삼십년 역사를 가진 연우무대는 당대성과 씨름하며 현실비판의 창작극 전통을 고집해온 극단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정치적 금기가 사라진 최근 십여년 사이 여러 번 존폐 위기에 직면하더니,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해무>에 와서 뚝심 있게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무대 공간은 순탄치 않은 조업으로 빚더미에 앉은 전진호. 좁은 무대를 갑판으로 만든 가파른 무대와 어망, 또 벽면을 해무처럼 푸른 휘장으로 감싸 안은 무대는 극장 전체를 배의 일부로 변경한다(무대 심채선). 선원들은 불법으로 조선족을 밀항시켜서라도 돈을 벌려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불행과 참극에 허둥대고, 급기야 해무에 갇혀버리고 만다. 앞으로 ‘전진’하려는 필사적인 생의 추진력과 모든 움직임을 저지하고 잠식하는 해무의 벽이 한판 씨름을 벌인 것이다.

작품을 쓴 김민정과 연출을 한 안경모는 작품 경력이 많지 않은 신인이다. 그러나 둘 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저력과 장인 정신을 갖추었다. 사실 질식할 듯한 죽음의 난장으로 치닫는 후반부에 접어들면서는 저렇게까지 갔어야 했는지, 자극의 과부하에 걸린 젊은 무대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현실비판에서 출발한 작품이 스릴러물로 흘러갔다는 아쉬움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러나 적당한 가벼움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의 어둠을 응시하는 작가의 결연한 시선,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을 바다 위의 삶과 죽음을 설득력 있게 구축하는 연출의 집요함은 신뢰를 준다. 특히 출렁이는 바다 위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경사진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구르고 몸싸움을 벌이는 역동적인 장면이나 불길하게 극장을 감싸 안는 청각적 효과들은 객석에 앉은 관객의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다. 사투리에서 성격 대비에 이르기까지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았는데, 생의 끝을 보여주는 신철진의 담담함과 때 묻지 않은 젊음을 자연스럽게 소화한 송새벽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사족 같은 이야기지만 때로 연극인들에게 연극하기는 해무를 해치는 일과도 같다. 바람 한 점 없는 바다 위에서 동서남북을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둘러싸인 채 고립된 심정. 오, 그러나, 그럼에도 전진하라. 공연은 22일까지, 연우 소극장에서.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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