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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60년대 인권운동의 오벨리스크

등록 2008-06-19 19:24

조운 바에즈의 <위 섈 오버컴>(1963년)
조운 바에즈의 <위 섈 오버컴>(1963년)
세상을 바꾼 노래 -31 조운 바에즈의 <위 섈 오버컴>(1963년)
1955년 흑인 여성 로사 팍스의 작은 저항이 촉발한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은 60년대 미국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 거대한 인권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 같은 움직임은 때마침 확산한 음악계의 ‘포크 리바이벌’ 경향과 만나 비폭력 평화시위의 강력한 연대를 구축했다. 그 결과, 당시 모든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빠지지 않고 불렸던 노래 <위 섈 오버컴>은 곧 인권운동의 음악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내셔널>이 노동자 운동을, <임을 위한 행진곡>이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을,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촉구 촛불집회를 상징하듯이.

하지만 <위 섈 오버컴>은 실체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여타의 ‘운동가’들과는 태생이 다르다. 20세기의 여명에 흑인 목사 찰스 틴들리가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노래는 본래 찬송가 용도였다. 녹음수단이 미비했던 시절, 세월을 거쳐 민중에 구전되고 수정 혹은 보완되면서 민속음악의 성격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노래가 저항과 희망의 송가로 탈바꿈한 데는 피트 시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미국 포크 리바이벌의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인 시거는 매카시즘의 여진이 남아 있던 50년대 후반에 이 노래를 처음 녹음했을 뿐만 아니라 흔히 <위 윌 오버컴>으로 불리던 제목을 <위 섈 오버컴>으로 바꿔놓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운 바에즈의 역할은 <위 섈 오버컴>을 민중에 각인시킨 일이었다. 밥 딜런의 반전가 <블로잉 인 더 윈드>가 피터, 폴 앤 메리의 버전으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것처럼, 피트 시거가 발굴한 <위 섈오버컴>의 가치는 바에즈의 “백만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소프라노를 통해 시대의 울림으로 구체화했다. 그의 목소리는 연옥 같은 지상에 내린 천상 복음의 매개였다.

조운 바에즈는 이 노래를 1963년에만 세 번 이상 녹음하였다. 모두 공연 실황이었고, 두 번은 집회 현장에서의 공연이었다. 그 첫 번째는 수많은 시위자들이 연행된 5월의 버밍엄대학 인권운동 집회였고, 두 번째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저 유명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이 행해진 8월의 ‘워싱턴 행진’이었다. 특히, 링컨기념관의 계단참에서 노래한 후자의 경우는 주최 쪽 추산 30만(경찰 추산 20만)의 민중이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를 합창하는 장관을 연출함으로써 60년대 인권운동사에 오벨리스크와 같은 이정표를 남겼다.

음악 저널리스트 콜린 어윈은 “역사를 통해 다수의 포크 리바이벌이 있었다”고 전제한 뒤, 60년대의 그것은 “사회문화에 대한 학구적 관점”에서 비롯한 전 시대의 경우에 비춰 “자연발생적인 유기작용”이라는 점에서 차별된다고 평한 바 있다. 전례가 없는 유형의 촛불집회 양상에서 10대 소녀들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현재진행형인 그 한 예라고 할 것이다. <위 섈 오버컴>의 의미는 미국의 60년대에 살 것을 강요받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터무니없는 현실에도 그렇게 살아있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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