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가 이병용(51·사진)
이병용씨 ‘10년 프로젝트’ 사진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진들 앞에서 그예 눈물을 쏟았다.
사진가 이병용(51·사진)씨가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 ‘1비르의 훈장’ 사진전을 7월1일까지 연다. 그가 10년을 두고 진행하는 유엔 한국전쟁 참전군인 프로젝트 가운데 첫번째 나라 에티오피아 편이다. ‘비르’는 에티오피아 화폐 단위. 1비르는 1천원 정도이니 제목은 ‘값싼 훈장’이란 뜻이다. 지난해 4~6월 아디스아바바 시내에서 20분 거리인 ‘코리아 빌리지’에서 참전군인 또는 그 유족들을 만났다. 사진전은 그에 관한 기록이다.
빛바랜 사진, 훈장증 따위를 안은 노파, 중늙은이, 소년·소녀들. 사진 속 군인들은 한결같이 늠름하고, 사진 밖의 사람들은 늙거나 비루하다. 전쟁의 기억과 고단한 현실 사이의 57년. 그 세월은 에티오피아에서나 한국에서나 모두 망각이었다.
‘자유수호’ 명분으로 한국에 온 그들은 셀라시에 황제의 근위병이었다. 모두 6천여명. 그 가운데 122명이 죽어서 돌아갔다. 그들에게는 참전 대가로 집과 땅이 주어졌다. 20년 뒤인 74년 쿠데타로 국가체제가 바뀌면서 ‘전쟁영웅’들은 ‘배신자’로 추락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불행하게 늙거나 죽어갔고, 미망인과 자녀들과 손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씨는 아디스아바바 거리에서 한 걸인과 맞닥뜨렸다. 걸인은 낡은 종이쪼가리를 내밀었다. 한국전 당시 국방장관인 신태영씨 명의의 ‘무공훈장증’이었다. 그는 이씨 또래의, 참전군인의 아들이었다. 그는 한국대사관에 연락해서라도 취직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황당했다.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을 찍는 것밖에 없었다.
나라가 할 일을 당신이 왜 하는가? 수없이 받은 질문. 답이 나오기까지 뜸이 들었다. 고양시 행신동 집이 홍수에 잠겼고, 그동안의 모든 사진작품들이 못쓰게 됐고, 몇해 동안 끌어온 보험금이 나왔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의 나이 뚝 꺾인 쉰이었다. “그동안 제대로 살아왔는지 자문해 보았어요. 그에 대한 답인 셈이죠.”
올 1~3월에는 터키를 다녀왔다. 그곳에서는 칙사 대접을 받았다. 피묻은 돈이었다. 참전국 순례 두 번째지만 나라마다 사정이 다름을 알겠다고 말했다. 부산 ‘유엔 기념공원’에 잔류한 2300여명의 죽은 병사. 고인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나라에서 왔거나, 강대국 소속 병사이지만 가난한 나라 출신의 용병이거나.
“제 프로젝트는 무척 흥미진진해요. 전쟁뿐 아니라 빈곤, 환경, 노인문제 등이 모두 들어 있어요. 이런 주제가 나한테까지 돌아오다니 나는 행운아입니다.” 눈물 뒤끝에 이렇게 덧붙이는 이씨의 표정은 묘했다. (02)734-7555.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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