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베드’
신체극 ‘맥베드’
혼란은 인간을 근원과 만나게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무엇이 문제였고 목적지는 어디였나. 어디에서 다시 출발할 것인가.
<지상의 모든 밤들>에서 매춘 여성의 현실을 심도 있게 다루었던 김낙형이 오랜 공백을 깨고 신작을 선보인다. 자신의 창작희곡을 주로 연출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맥베드>의 현대화로 변신을 시도했다. 셰익스피어. 모든 연극 순례자들의 근원과도 같은 곳.
<맥베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유난히 어려운 작품이다. 마녀가 맥베스를 유혹하듯 원작의 초현실성은 연극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생짜배기 무대 위에서 초현실성을 주조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뿐인가. 야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맥베스의 욕망과 죄의식은 윤리감을 상실한 현대인의 초상과 겹쳐지며 보편적 감응을 줄 듯하지만, 화해나 성찰 대신 인간의 검은 운명으로 돌진하는 원작의 저돌성과 장광설의 대사는 자주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한국 <맥베드> 공연사에서 큰 성공작이 없는 데는 그런 이유가 한 몫 하였을 것이다.
김낙형과 극단 죽죽의 <맥베드>는 소극장에서 단 8명만의 배우로 진행된 소품이고, 극의 전개 역시 맥베스의 내면에 맞추어 재배치하며 장광설의 대사를 압축한 편의적인 전략을 구사하였다. 그러나 그 간략함에도 불구하고 풍요로운 연극성과 원작의 본질을 파고드는 집요함은 맥베스를 비껴가지 않는다. 아직 정제되지 않은 거친 무대였지만, <맥베드>의 실현 가능성을 드디어 만난 느낌.
무대는 최소한의 조명 아래 일렁거리는 촛불로 제의적 정서를 제공하면서 빛과 어둠, 양심과 욕망, 인간의 유한한 운명을 환기시킨다. 그 어두운 무대에서 김낙형은 야망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의 비극을 밀도 있는 연극성으로 채워 넣는다. 전투에 가까운 배우들의 격렬한 움직임, 바닥을 긁는 불안한 소리, 놋쇠대야에서 흩뿌려지는 죽음의 잿가루, 권력(자리)을 탐하는 인간을 상징하는 최소한의 오브제인 의자와 책상의 활용. 때로 그 오브제는 인간을 막아서는 벽이 되었다가 돌진하는 칼이 되기도 하면서 배우와 한 몸이 되어 종횡무진 극을 진행한다.
물론 이런 연극성은 고전을 현대화하거나 연극적 연극을 지향하는 젊은 무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자주 연극성에 대한 탐닉으로 흘러가면서 원작과 겉도는 풍경을 연출했다면, 이번 <맥베드>는 원작의 본질과 단단하게 맞물린 연극성을 탐색했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시도다. 그의 오랜 공백이 무의미하지 않았다. 좋은 재출발이다. 공연은 8월3일까지 대학로 스튜디오76에서.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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