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쿡의 <어 체인지 이스 고너 컴>(1964년)
세상을 바꾼 노래 33. 샘 쿡의 <어 체인지 이스 고너 컴>(1964년)
세계적 흥행작이었던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1980)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초반부에 등장한다. “솔 음악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이 목사로 출연하여 가스펠을 부르는 부분이다. 비록 과장된 연출이나마, 거기에는 미국 흑인의 수난사와 흑인음악의 발전사가 중첩된 교집합적 영역으로서 교회의 위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 속에서 음악은 성과 속의 경계가 사라진 난장의 매개로 드러난다. 가스펠과 솔 음악의 불가근한 동시에 불가원한 관계적 특수성이 화해하는 지점이다.
물론, 가스펠의 솔 음악적 변용 혹은 솔 음악의 가스펠 차용이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건 아니었다. 종교적 경건과 세속적 욕망의 구분에 엄격했던 흑인사회 내부의 윤리적 갈등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큰롤을 둘러싼 백인사회의 반목이 그랬듯이, 그것은 ‘다가오는 변화’ 앞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았다. 인권운동의 매개라는 역할이었다.
역사가 테일러 브랜치는 솔 음악이 60년대의 정치에 중대한 의미를 만들어냈다고 평한 바 있다. 백인 청중과의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솔 음악 스타들이 마틴 루서 킹 목사보다 앞에 있었다”며 “킹 목사가 염원했던 (흑백간의) 감정공유를 그들이 풀어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백인 뮤지션들과의 차별점이기도 했다. 요컨대, 백인 포크가 이성적 정의감으로 당위의 권리를 인식시키고자 했던 것에 비해 흑인 솔은 현실적 절박감으로 당면한 투쟁을 공감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샘 쿡의 <어 체인지 이스 고너 컴>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근거도 거기 있다. 복잡하게 얽힌 성속의 유별과 흑백의 차이를 아우르고 이뤄낸 성취였기 때문이다.
샘 쿡은 스스로가 사회적 모순의 피조물이었다. 성공한 흑인의 역할 모델인 동시에 그 딜레마의 상징이기도 했다. 가스펠 그룹의 일원으로 출발해 솔 음악의 스타덤에 오른 그는 교회와 클럽을 오가며 균형을 유지하려 애썼고, 레코드회사를 설립하여 흑인 음악가들의 권익을 도모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인기의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백인 소유의 메이저 레이블에서 활동해야 했다. <어 체인지…>는 바로 그 경계선상에서 탄생했다. 맬컴 엑스와의 교유와 밥 딜런으로부터의 자극을 통해 마침내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바를 찾은 결과였다. 특히, 밥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에 대한 샘 쿡의 반응은 복잡미묘했다. “흰둥이가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를 각성시켰던 것이다.
<어 체인지…>는 <블로잉…>에 대한 답가였다. 가스펠과 블루스와 솔과 팝의 요소들이 뒤섞인 음악적 크로스오버였고, 슬픔과 회한과 인내와 희망이 뒤엉킨 감정적 정화였다. 그것을 샘 쿡은 인간의 육성으로 화한 신의 의지로 노래했다. “결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 하지만 이제 나는 전진할 수 있다네 /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지만 / 변화가 다가오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네”. 느끼건대, 그 뭉클한 뜨거움은 시청 광장의 시국미사가 전한 메시지와 닮은 것이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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