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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숨죽인 생존경쟁, 숨가쁜 전개

등록 2008-07-10 18:21

연극 ‘최종면접’
가면 쓰기는 연극 고유의 본성이면서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가면 쓰기가 최근 들어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점점 가속화하고 악용되는 눈치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말과 입장을 바꾸고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가 되어 미소 지으며, 살아남기 위한 이미지 관리나 가면 쓰기는 현대인의 수치가 아니라 본질이 된 눈치다.

스페인 작가 조르디 갈세란이 쓰고 서충식이 한국적으로 번안·연출한 <최종면접>(원제 <그뢴홀름 방법론>)은 그 가면 쓰기와 벗기기 게임을 통해 현대 사회를 신랄하게 해부한 작품이다. 극적 공간은 데끼아코리아라는 다국적 기업의 면접실. 작가는 폐쇄적인 면접 공간에 출세를 꿈꾸는 4명의 구직자를 모아놓고 그뢴홀름 방법이라는 특이한 채용방법을 제시한다. 깜짝쇼처럼 우편함으로 수행과제가 배달되는 그 채용방식은 가짜 지원자 색출부터 동정심에 호소하기, 배우처럼 다른 인물이 되어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살아남기, 사생활 폭로로 이어지는 일종의 연극적 서바이벌 게임이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 동정심이나 양심을 폐기 처분하고 살아남는 것에만 골몰하는 일이다. 지원자들 역시 처음엔 이성적으로 분별하다가 차츰 적자생존식 그뢴홀름 채용방식에 몰두하면서 살아남는 데 방해가 되는 예의와 인간성은 포기하고 거짓과 가면으로 세상에 대처한다.

투우사처럼 세상을 향해 칼을 빼든 작가의 관점은 냉정하지만, 달려오는 황소처럼 극적 형식은 뜨겁고 활달하다. 과연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작품을 관통하는 게임의 법칙이 호기심과 열기를 유발하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구조와 촌철살인의 블랙유머가 역동적으로 어우러지면서 현대인의 초상을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특별한 장치 전환이나 시각적 스펙터클에 의존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밀도와 연기력이다. 연출을 맡은 서충식은 단일한 공간에서 암전 한번 없이 진행되는 작품을 매끄럽게 전개하고, 공연 초반에는 실제의 면접 공간에서 차출한 듯 평범하기만 하던 배우들 역시 반전의 구조 속에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면서 연극성을 확보해 나간다.

작품이 가진 지적 재미나 연극성에 덧붙여, <최종면접>은 경기 불안과 구직난이라는 최근의 한국 상황과 어우러져 관객들의 공감을 받으며 드물게 장기공연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고임 없이 흘러가기만 하는 빠른 템포가 때로 성찰의 시간을 박탈한다는 점, 또 무성의해 보일 정도로 무대 공간이 평범한 점은 개선이 필요하다. 공연은 8월17일까지 상상블루 소극장에서.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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