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과 함께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인 ‘와이비에이’(YBAs, young british artists) 3인방으로 불리는 영국의 스타작가 마크 퀸(45·오른쪽 사진)이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음달 3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에 맞춰 지난 10일 한국에 왔다.
그는 식사를 겸한 간담회 테이블에 차려진 포도주 잔을 물렸다. 술이 혐오스러워서일까, 유혹적이어서일까. “향 알레르기가 있어 적포도주의 진한 향이 괴롭다.” 처음부터 까칠하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에게 술은 각별하다. 1993년께 내면세계가 고갈된 듯한 초조함에 활동을 중단하면서 알코올에 탐닉했다. 그는 중독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면서 생명과 삶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의 작업을 꿰는 주제어는 ‘생명에의 외경’. 갓난 자기 아들의 태반을 얼려 아들의 두상을 만들었고, 자기 피를 뽑아 얼려서는 자기 얼굴상인 <셀프>를 만들기도 했다. 또 양팔 없는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의 임신한 모습을 조각해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넬슨 제독 동상과 나란히 전시한 바 있다. 이번 한국 전시회에는 꽃을 주제로 한 극사실화(왼쪽 사진)들과 유명 모델 케이트 모스를 모델로 한 <끝없는 기둥>, 빵으로 구워 브론즈로 완성한 <루이 16세> <마리 앙투아네트>, 수련하는 모습의 해골 조각 <환영에 관한 명상> 등 20여점을 선보인다.
<셀프>를 만드는 데 들어간 피는 인체 혈액량과 일치하는 4ℓ. 피는 6~8주 걸러 1파인트씩 뽑아 모은다. 5년마다 하나씩 만들어 지금껏 5개를 만들었다. 한 작품은 국내 아라리오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셀프> 에디션 하나는 영국 사치 앤 사치 갤러리에 전시 중 청소부가 냉동 전기코드를 뽑는 바람에 녹아버렸다는 괴담도 돌았다. 그는 헛소문이라고 말했다. <셀프>는 전기를 공급해야 존재하는 만큼 생명의 나약함 또는 알코올처럼 중독성을 상징한다는 설명.
그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그보다 더 강력한 자화상을 만들기 위해 피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혹시 더 쇼킹하게 당신의 전신상을 만들 생각은 없는가?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뜸을 들이다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한국 전시의 주종목은 극사실로 그린 꽃. “자연 섭리가 아니라 인위적 조작으로 생육되는 꽃들을 한꺼번에 보여줘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가 즐겨 그린 것은 서양란. 꽃술 모양이 해골과 비슷해 보이는데, 의도적인 것이냐고 묻자 “그렇지 않다”며 “작은 것을 확대하면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을 보느냐는 보는 이의 욕망과 관련된다”고 대답했다.
알코올에서 벗어나며 생명의 외경을 느꼈듯이 알코올에 다시 탐닉해 새로운 창조를 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노”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실수에서 교훈을 얻었으면 그만”이라며 말을 잘랐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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