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태 화백.
김봉태 화백 전시회
연분홍 셔츠에 우윳빛 바지, 날렵한 운동화 안에 분홍 양말을 신었다.
엥포르멜, 행위예술, 미니멀리즘 등 예술의 첨단을 걸어온 김봉태(72) 화백은 ‘청년’이다. 갤러리현대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춤추는 상자’라는 제목의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작품들 만큼이나 캐주얼한 차림에 밝은 표정이다.
“삶은 속박의 연속입니다. 제 그림은 자유롭고 싶은 욕망의 표현입니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각종 빈 상자들. 평면 또는 입체의 상자들은 내용물을 모두 비우고 반쯤 해체되어 있다. 육면체의 면들은 노랑, 빨강, 초록, 하양 등 밝은 색으로, 또는 테만 남은 선의 형태로써 색과 면, 면과 선의 조화를 실험 중이다. ‘창문’ 시리즈에 이어 2004년부터 시작된 ‘상자’ 시리즈는 차렷 자세에서 출발해 춤추는 모습에 이르렀다. 아주 정제된 동작.
“가게 앞에 버려진 종이상자가 늙어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화가와 흡사하더군요.”
2004년, 작가는 로댕의 <지옥의 문>을 보고 죽음 이후의 모습을 그린 것에 강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지병으로 한동안 고생하면서 약을 무던히도 많이 썼던 터다. 죽은 상자에 다시 생명을 주고 싶었다. 조몰락거리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종이갑들을 모아 칠도 하고 조합도 해보았다. 크고 작은 빈 상자들이 엄마, 아빠, 아들 등 따뜻한 가족 같기도 했다. 그러다가 평면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물이 특수유리인 플렉시글래스 위에 그린 아크릴화와 그 아크릴화를 다시 입체화한 철조각. 처량한 박스가 한창 나이에 용도폐기된 사람들한테 주는 희망의 말이 된 것이다. 물론 화가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에샤페, 파드되, 발랑스, 아라베스크…. 상자들은 여축없는 발레리나의 동작이다.
“그동안 친구들한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작품들이에요.”
깜짝 놀랐지? 하며 보여주는 ‘춤추는 상자’들이 커다란 선물상자인 셈이다. 그 속에 든 것은 작가 자신. 그 가운데 노란 옷을 입고 다리를 꼰 채 서서 물끄러미 창밖을 보는 모양도 있다. 경쾌하게 보이는 작가의 속내를 누구라서 짐작하겠는가. 해탈한 노승이 들었는지, 천진난만의 아이가 들어있는지.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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