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라 ‘선전공화국’
대안공간 루프(02-3141-1377)에서 20일까지 열리는 김기라 작가의 전시회 ‘선전공화국’은 자본주의, 세계화, 팍스아메리카나에 짜부라진 이들의 가위눌림이자 “도대체 이를 바꿀 용기 있는 자 어디에 없나”라고 동지를 부르는 소리다. 1층에는 패스트푸드 정물화가 관객을 맞는다. 코카 콜라, 햄버거, 스타벅스 커피, 허쉬 초콜릿, 던킨 도너츠 등 먹다 버린 것들이 화폭 그득하다. 비벼 끈 꽁초, 벗겨진 은박지, 흘러넘치는 맥주 등 누군가의 자취가 느껴진다. 해골이나 깃털 등을 그려 삶이 짧고 덧없음을 상징했던 17세기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화가 21세기 부활한다면 꼭 이럴 것 같다. 층계의 벽화 역시 중세의 삽화를 현대적으로 변용해 재산의 사유가 맹목적 가치가 된 사회를 풍자한다. 2층에 전시한 <편집증 환자의 비밀정원>은 청자, 백자, 코끼리, 수석, 분재 등의 작은 컬렉션. 아시아 물건 수집벽을 가진 영국인의 정원으로, 감시카메라가 작동하고 있다. 작가가 영국 체류 당시 영국인의 오리엔탈리즘을 비꼬았던 작품. 개항 이래 서양식 교육을 받아 아류 서양인이 된 한국인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는 발언이기도 하다. 지하 전시실에서는 자본주의의 소리와 빛이 마구 뒤엉켜 기괴한 형상을 연출하는 설치작품들을 모았다. 영상은 “안녕하십니까”를 되풀이하는 텔레비전 뉴스의 앵커들을 보여준다. 30일 동안 세 방송사의 저녁뉴스 첫머리를 녹화했다. 새롭다는 뉴스는 대부분 사건사고들. 이것들 역시 사유재산제가 빚은 탐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사건사고에서 무사하시냐고 묻는 것으로 뉴스를 시작한다는 해석이다. 대한뉴스에서 끄집어낸 국군의 날, 모범용사의 날, 귀순용사 환영, 올림픽 선수 개선 등 각종 퍼레이드 영상도 있다. 정작 주인공은 들러리고 국가주의와 전제적인 대통령이 부각되었다. 설치작품 <아이 러브 유>는 전화번호 안내원들이 첫마디였던 “사랑합니다”를 네온사인처럼 꾸몄다. 지순한 사랑을 상업화한 것에 다름 아니란 뜻이라고 한다. 또다른 작품 <코카 킬러>는 코카콜라가 자본주의가 달콤하다는 환상을 심어줘 결국은 개인의 입맛마져 세계화에 복속시킨다는 작가의 생각을 담았다. 영화사 20세기폭스사와 유니버설영화사의 로고 장면을 패러디한 영상작품 <21세기 세상>은 테러와 전쟁, 환경재앙들을 경고하고 있다. “꽃그림은 그림이 아니다.” 팔기 위한 예쁜 그림은 안 그리며 그림으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단호한 발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생존할 것 같지 않은데 멀쩡하게 화가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의 발언이 확고한 작품성을 동반한다는 증거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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