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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웃으며 전하는 우울한 현실

등록 2008-08-07 17:54

뮤지컬 ‘슈퍼맨처럼’
어린이도 심각한 주제의 공연을 즐길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다. 우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던 <우리는 친구다>와 자립의 어려움을 요리 만들기로 보여주었던 <고추장 떡볶이>에 이어, 김민기와 극단 학전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어린이 뮤지컬 <슈퍼맨처럼>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치곤 꽤 긴 호흡의 100분짜리 작품이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맨이 제목에 들어가지만 실제 작품의 주인공과 소재는 현실 속의 장애아동이다. 그런데도 어린 관객들은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집중한다.

하긴 그러고 보니 우리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그저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엉뚱한 상상이나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어린이들 역시 모순과 혼돈에 찬 삶을 살아가고 자기 식으로 고민한다. 학전의 어린이극이 가진 장점은 익숙한 삶에서 소재를 취하면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활력과 박진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슈퍼맨처럼>에서 우선 돋보이는 것은 현실적인 등장인물과 상황이다. 슈퍼맨을 흉내 내는 장애아동, 가사와 일을 병행해야 하는 이혼한 엄마의 피곤함, 자유롭게 놀고 싶지만 집안일을 거드느라 짜증나는 꼬마 여동생, 이사 온 낯선 동네, 새로운 친구 사귀기, 편견과 이기심으로 장애아를 밀어내는 세상 놀려먹기 등등. 작품은 단순하지 않은 삶의 복잡한 결을 아기자기하게 펼쳐낸다.

또 기타와 플루트가 동반된 서정적인 노래(비르거 하이만 음악), 친구를 사귀는 설렘과 부끄러움의 과정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포착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특히 장애아를 처음엔 낯선 괴물 대하듯 무서워하던 친구가 보조기를 차고 처지를 바꿔 장애를 체험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뒤뚱거리고 넘어지는 그 익살스러운 풍경은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지만, 웃음 끝에 불편함으로 생을 견디는 사람들에 대한 뭉클한 공감을 자아낸다. 극장이 나와 다른 타인을 껴안는 축복의 장이 되는 순간! 이 작품은 그렇게 경쟁구도와 이기적인 엘리트 교육이 방관하는 공존의 미덕에 대해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 다정하게 알려준다.

두 가지 문제점. 이 작품은 폴커 루트비히와 로이 키프트의 원작을 김민기가 한국적으로 번안했다. 짜임새 있고 탄력 있는 전반부에 비해 낙관적 계몽주의로 흐르는 결말은 김빠진 듯 힘이 없다. 한국보다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과 제도가 긍정적인 독일식 결말이 설득력을 갖추자면 좀더 철저한 번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또 비록 소규모이긴 하나 뮤지컬의 형식을 갖출 거라면 더 훈련된 가창력이 필요하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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