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공연 ‘몬스터 발레’
지난 9~12일 여의도 둔치에 자리한 강변무대에는 거대한 굴착기 네 대가 사각으로 마주하고 그 가운데는 흉물스러우리만큼 큰 철골 구조의 로봇 형상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2008년 ‘하이 서울 페스티벌 여름 - 한강’의 공연 중 <몬스터 발레>의 무대다.
야외무대를 의식한 다채로운 색의 조명과 외관을 치장한 굴착기, 기계의 왕을 상징하는 구조물은 그 자체로 춤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스펙터클이었다. 야외무대가 갖는 장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에 비해 작디작은 인간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스크린을 통해서만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작품의 주제가 기계와 인간의 조화라는데, 작품의 중심인 인간이 보여주는 춤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왜 그 거대한 기계가 인간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교화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굴착기가 동원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무대라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무대는 ‘장치’를 가정하는 일이기에 기계가 공연 무대에 개입했던 것은 오래된 일이다. 다만 어떻게 개입하였는가다. 단순 장치들을 넘어서, 스크린이 활용되고 로봇이 함께 춤을 추었던 적(스페인 파블로 벤투라 무용단)도 있고, 물론 이번과 같이 굴착기와 함께 춤을 추었던 해외 사례(프랑스 도미니크 보아방)도 있다. 다만 발레가 특정 관객 층이 아니라 일반 시민을 관객으로 하였으며, 보통의 무대가 가질 수 없는 규모를 안무할 기회를 가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 주인공은 파리오페라 발레단의 동양인 최초 솔리스트인 김용걸. 그의 첫 안무작이라는 것 역시 낯선 무대가 마냥 신기한 어린 관객들에게는 중요치 않은 부분이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대규모 무대가 첫 안무작에 주어지기나 했을까? 결과물의 성취도를 떠나 안무가의 충일한 삶은 이 기회를 갖기에 자격이 충분했으며, 이런 대형 무대는 무용에 계속 필요하다.
<몬스터 발레>에서 안무가와 굴착기 데몬스트레이터는 인간이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것과 인간이 기계를 움직이는 것이 충돌하는 상태를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특히 ‘굴착기의 달인’으로 일컫는 이정달 굴착기 데몬스트레이터의 안정감 있는 조정능력은 이렇다 할 안전장치가 눈에 띄지 않는 상태에서 여성 무용수가 굴착기에 몸을 싣고 여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굴착기와 인간이, 굴착기 데몬스트레이터와 세계 수준의 솔리스트 출신 안무가와의 만남이라는 기획까지는 흥분할 만했으나, 의도한 바가 실현되기까지는 더욱 치밀한 연출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실행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진아/문화칼럼니스트 wallbrea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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