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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할아텍’ 사람들 폐광촌 철암에 녹아들다

등록 2008-08-21 18:51수정 2008-08-22 21:35

철암역전 옹벽에 설치된 벽화들. 왼쪽부터 이경희, 서용선, 앤디 탐슨, 정일영의 작품
철암역전 옹벽에 설치된 벽화들. 왼쪽부터 이경희, 서용선, 앤디 탐슨, 정일영의 작품
틀 없이 열린 공간…근대사 ‘옹이’ 남아
석탄산업 예술로 기록…7년째 문화운동
지난 16일. 해바라기 축제가 한창인 강원도 태백시 구와우마을 고원자생식물원. 5만여 평 노랑바다 한켠에 세워진 ‘전시공간 할1’과 ‘할2’에서는 김태옥 회화전, 이경희 조각전이 각각 열리고 있었다.

“인사동, 사간동, 청담동은 예술가, 수집가들끼리의 닫힌 공간입니다. 끼리끼리의 유희는 생명력이 없다고 봅니다. 이곳은 축제에 온 일반인과 지역주민 등 길들여지지 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관객으로 하는 열린 공간입니다.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작가는 새로운 힘을 얻고, 작품은 본연의 생명력을 회복하게 되지요.”

지난 5월 인사동에서 전시를 연 바 있는 이경희 작가(한국디지털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이곳에서의 전시는 성격이 무척 다르다고 말했다. 8년 만에 다시 붓을 잡은 김태옥 작가는 이번 전시가 앞으로의 작품에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할아텍(할 예술과 기술)의 최고참 회원. 할아텍은 2001년 서용선, 이경희, 류장복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비정형 비법인 단체. 이들은 2002년 우연히 이곳 태백시 철암을 알게 된 뒤 ‘철암 그리기’라는 이름으로 매월 셋쨋주 정기적으로 철암을 찾고 있다. 작가마다 자신의 장르로 철암 석탄산업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기를 6년여, 모두 83차례에 이르고 있다.

철암 상가건물 벽에 그린 벽화, 배석빈, 장성아, 이혜인씨의 공동 작품이다.
철암 상가건물 벽에 그린 벽화, 배석빈, 장성아, 이혜인씨의 공동 작품이다.
이들은 철암역사에는 갤러리를, 구와우마을에는 갤러리와 야외 조각공간을 만들었다. 서용선, 류장복, 이강우, 이경희, 배석빈, 장성아, 한응전, 임홍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철암역 앞 콘크리트벽과 인근 상가건물 벽에 철암과 석탄을 소재로 한 대형벽화 <기억의 벽>을 제작했다. 또 지난해부터는 현지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문화예술학교를 열어 다양한 창작 활동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활동회원 30여 명, 후원회원 100여 명.

“철암에는 대도시가 짜놓은 틀이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틀에 맞춰진 지식이 쓸모없어지면서 스스로를 객관화하게 되고 작업은 새로운 출발점에 놓입니다.” 할아텍의 핵심인물인 서용선 교수(서울대 미대)는 틀의 부재가 작가의 기능과 역할을 팽창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왜 철암인가?

고원자생식물원 해바라기밭(위)과 그곳에서 조각전을 연 이경희씨.
고원자생식물원 해바라기밭(위)과 그곳에서 조각전을 연 이경희씨.
철암의 중심인 철암역, 철암역의 핵심인 선탄장 때문이라고 할아텍 회원들은 입을 모은다. 1960~70년대는 석탄공사 배지를 달면 장가가기 쉬웠고,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전해진다. 석탄이 석유·가스와 임무교대를 하면서부터 철암지역 탄광은 하나 둘 문을 닫아 이제는 석탄공사 하나만 명맥을 잇고 있다. 한때 10만명 넘게 북적이던 철암은 이제는 고작 3만여 명만 남았고 상가와 사택은 빈 채 퇴락해갔다. 1930년대 지은 대한석탄공사 선탄장은 원석탄에서 잡석을 골라내는 시설로, 2002년 등록문화재 제21호로 등재됐다. 다른 탄광 도시가 카지노, 스키장 등 오락도시로 바뀌면서 고철로 뜯겨나간 것과 달리 철암의 선탄장은 현역으로서 부대시설을 거느리고 있다. 작가들에게 검은빛 우금산을 등진 선탄장은 매력적인 조형물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일군의 건축학자들이 몰려와 ‘빌리지움’을 꿈꿨다. 도시 자체를 완전히 보존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것. 선탄시설은 물론, 철암천에 다릿발을 세워 걸터앉은 상가, 궁둥이 걸칠 만한 땅이라면 모조리 들어앉은 게딱지 집들을 보존하여 관광자원화한다는 계획으로 집 다섯 채에서 시범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당장 개발과 보상을 원하는 주민들, 그리고 이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공무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2년 만에 손을 뗐다. “곧 나가떨어지겠거니” 하던 또 다른 서울내기들이 7년째 꾸준히 드나들면서 주민들과 공무원들은 이들을 선탄장과 같은 지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린 체계적이지도 않고 경영 마인드도 없어요. 하지만 이곳의 근대 산업시설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현지인들과 공감하기 위한 통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서용선 교수의 말이다.

철암역 앞 맞은 편 천변상가들은 도로 확장을 위해 하나 둘 뜯겨나가고 있다. 된장찌개를 시켜먹던 역전 ‘신토불이’ 식당도 문을 닫았다. 이들이 한때 입주 작업장을 꿈꾸던 삼방동 집도 허물어져 옥수수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겨울, 스케치를 하던 회원에게 주민 한명이 다가왔더란다. 한참을 등 뒤로 들여다보던 그가 하는 말. “추운데 여기서 뭐 하슈?” 강원도 사람 특유의 이심전심으로 통했다는 증거로 회자되는 얘기다.

태백문화원에서는 할아텍과 함께 함태광업소 자리의 탄광체험관을 작가들의 작업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한 공무원은 할아텍을 두고 “철암을 위해 하늘에서 떨군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철암/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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