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래’
연극 ‘고래’
이해성이 쓰고 연출한 <고래>(극단 백수광부, 연우소극장 8월31일까지)는 아직 거칠다. 마지막 공정을 끝내지 못하고 진열대에 서둘러 나온 상품처럼 세련미나 감각적 완성도가 부족하다. 그러나 포장에 매혹되었다 실체에 허탈해지는 상품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고래>는 서툴고 성긴 표면을 가졌지만, 표면 아래의 수심이 고래라도 뛰어놀 듯 깊고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작품은 1998년 강원도 속초 해안으로 침투했다가 어망에 걸려 집단 자살한 북한의 잠수정 사건을 소재로 취했다. 극적 공간은 남쪽 바다에 잠입한 북한 잠수정이라는 제한된 공간. 등장인물은 잠수정을 운행하는 네 명의 선원과 공작사업을 수행하고 돌아온 남파 간첩 세 명이 전부다.
카메라를 따라 무수히 이동하고 수천 명이 출연하는 전투장면도 손쉽게 만드는 영화가 탁 트인 자유의 예술이라면, 생예술(Live Art)인 연극은 무대라는 조그만 공간에서 세계와 교신하는 제약 많은 예술이다. 그러나 좋은 극작가는 그 제약에 굴하지 않고, 핀셋으로 집어내듯 세상의 본질을 추출할 줄 안다.
<고래>에는 그런 씨앗이 있다. 지도와 잠망경으로 허술하게 장식한 잠수정 공간에서 단 한 번의 이탈 없이 남과 북, 삶과 죽음, 이념의 지배를 받는 잠수정과 심해를 자유롭게 누비는 고래 소리의 대비, 남한에서 콘돔을 훔쳐왔다고 좋아하는 전반부의 희극성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죽어가는 후반부의 비극성을 자연스럽게 버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쓴 이해성이 연극배우로서의 경력은 길지만 극작가로서의 경력이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고래>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조그만 무대를 용광로 삼아 한반도의 모순과 삶의 부조리를 끓여낸 작가의 솜씨가 주목할 만하다. 단막극을 장막극으로 확장하면서 생겨난 디테일의 부족이나 감상주의를 극복한다면 문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연출가 이해성은 작가 이해성에게 썩 도움이 되지 못했다. 첫 연출이어서인지 단선적이고 남성적인 배우들의 연기를 조율하지 못했고, 환하고 시끌벅적한 무대 분위기는 심해를 숨어다니는 잠수정이 아니라 시장통 같다. 다행히 작품의 거친 분위기는 삶을 선택한 두 명의 선원이 희박해지는 산소를 마시면서 죽어가는 후반부에 오면 차분히 정제된다. 특히 처음으로 잠수정을 탄 신참이 남쪽에서 태어난 어머니의 고향 흙을 뿌리는 장면에 도달하면, <고래>는 우리를 둘러싼 명분없는 대립과 어처구니없는 희생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시적인 성찰을 이루어낸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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