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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한국사회, 최면에 빠진 일상

등록 2008-08-28 21:36

주마등 한국사회, 최면에 빠진 일상
주마등 한국사회, 최면에 빠진 일상
임민욱 개인전 ‘점프컷’
임민욱(41)의 작품들은 껄끄럽고 축축하다. 카펫의 터럭을 깎아 문양을 새기고, 빗물 웅덩이에서 마블링(물 위에 기름 물감을 띄워 종이로 찍어내는 판화기법)을 떠내는 것이 그렇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마찬가지다. 막개발, 부동산 투기, 비소통, 그리고 이주노동자 문제 등.

광주비엔날레 광주은행상과 에르메스 미술상을 받았지만 주로 대안공간에서 활동해 온 그가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점프컷’이라는 이름으로 10월12일까지. 오랫동안 닫혔던 아트선재센터로서는 아주 ‘센’ 전시로 쌓인 먼지를 털어내기로 작정한 셈이다. 미술평론가 이영욱씨는 ‘너무나 늦은 혹은 너무 이른’ 전시라고 평한다.

점프컷은 원래 연속된 장면을 툭툭 잘라 이어 붙여 등장인물이 순간이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영화편집 기법.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회의 상황을 잡아낸 작품들을 아우르는 이름이다. 전시장을 돌아보면 작가와 함께 기억 속으로 점프컷 이동하는 듯한 환각에 빠진다.

작품 소재는 모두 작가, 또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다. 작가의 여덟 살 난 딸, 친구의 시아버지가 쓰던 그랜저 2.4 승용차, 사놓고 쓰지 않는 필기구, 철 지난 신문지 등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약간 손봐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랜저 승용차를 예로 들면, 구입 당시 부의 상징이었고 당사자한테는 소중하지만 이제는 한물간 애물단지가 됐다. 공짜로 작가한테 넘겨진 차에 간첩, 연대보증, 조마조마, 욕심 등 버리고 싶은 단어를 잔뜩 칠한 채 비 오는 자유로를 달려 행위예술을 한 뒤, 글씨가 빗물에 씻겨지는 모습을 복덕방, 아파트단지 등 시대적 배경과 함께 스틸사진으로 작품화한다. 자동차는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분수 조형물이 되어 전시장 가운데 놓였다.

또다른 특징은 교외에서 소재를 취했다는 점. 경기도 일산 임시작업실에서 작업을 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지금-여기’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작가한테 자연스러울 테지만 그의 눈에 띄는 것이 크게 달라지겠는가. 버려진 생활쓰레기 가운데 깨진 거울에 비치는 을씨년스런 모텔. 칙칙한 아파트. 대비되어 빗물 웅덩이에 꽂힌 여러 색깔 필기구들. 현재가 인식되기도 전에 지워지는 현실을 포착한다.

작가는 소통을 강렬하게 원한다. 그러나 나서서 떠벌리지는 않는다. 비디오 작품 <장마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다문화축제와 프랑스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 이야기를 나란히 보여주면서 중간중간에 스무고개 문제를 낸다. 문제를 맞히다 보면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새싹을 본뜬 새마을운동 로고를 반복해 만든 카펫 작품에서 닭발을 연상해도 그만이다.

다만 최면에 빠진 일상, 타성화한 기억이 깨지기를 바란다. 좁은 통로, 턱이 30㎝ 가량 되는 유리계단 세 개를 조마조마 오르면 눈 아래, 산산이 부서진 유리조각들. 한층의 절반을 차지한 이 설치작품은 심약한 관객한테는 ‘쨍그랑’ 소리로 들린다.

왜 이제야 ‘제도권 전시장’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됐을까. “그동안 해온 공동작업에서는 논리가 분명하고 이를 증명해야 했어요. 직감이나 즉흥이 받아들여지지 않더군요. 제가 즉흥적이거든요.” 임종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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