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는 위험한 시도다. 오드리 헵번이 주연했던 과거 영화에 대한 복고적 향수, 또 거리의 꽃 파는 아가씨가 상류층 아가씨로 변신하는 현대판 신데렐라의 매력이 존재하긴 한다. 그럼에도 최신 뮤지컬이 앞다투어 국내로 영입되는 상황에서, 1950년대에 초연됐던 뮤지컬이 그 유행과 속도를 이길 수 있을까.
더 큰 문제점은 언어다. 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이 원작인 이 작품은, 런던을 배경으로 언어학자 히긴스가 빈민 소녀 일라이자의 언어를 교정하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다룬다. 말하자면 언어가 이 작품의 숨은 주인공인 것이다. 그런데 같은 도시에서도 상류 귀족과 하층의 언어가 명백히 다른 영국적 문화가, 역사의 부침 속에 언어의 차이라곤 사투리 정도만 존재하는 한국식으로 과연 번역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연출은 한국말을 모르는 데이비드 스완이다.
막이 올라간 무대를 지켜보니 역시 우려했던 문제점들이 현실로 드러난다. 적절한 빈민층 언어를 찾지 못한 제작진은 거친 말투와 사투리를 엉거주춤 섞어 일라이자의 말투를 만들었고,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그 말의 향연과 충돌은 객석을 다소 무료하게 만든다. 다행히 언어의 차이가 비교적 섬세하게 조율되었던 전막 후반부의 경마장 장면에서 상황에 맞는 희극적 해프닝을 연출하지만, 중반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공연이 재미있어지는 것은 관객과의 즉각적 교감이 중요한 뮤지컬로선 때늦은 감이 있다.
작품이 탄력을 상실한 데는 배우도 한몫했다. 작은 체구로도 무대를 채우는 윤복희와 김성기 같은 조연은 호연했으나 문제는 주인공 커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일라이자 역을 매력적으로 소화하기에 김소현의 연기는 아직 단선적이고, 언어학자 히긴스를 연기한 이형철은 단어들이 뭉개지고 흩어질 정도로 힘을 주고 발음해 정작 무대에서 언어 교정이 필요한 사람은 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스완은 그동안 오디뮤지컬컴퍼니와의 꾸준한 작업 속에 문제적 뮤지컬을 만들며 국내에서 뮤지컬 연출가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마이 페어 레이디>에 와서 그의 업적은 좀 타격을 받을 눈치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장치의 위용, 그리고 작품에 대한 정확한 해석력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언어의 맛을 살리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 재공연을 준비한다면, 좀더 꼼꼼하고 정확한 한국식 번역과 협력 연출이 필요할 터이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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