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하케, <트리클 업>(소파와 쿠션), <미션 어컴플리시트>(액자). 광주비엔날레 제공
광주비엔날레 리뷰
코소보·팔레스타인·아프리카 등
약자·소수자 ‘현실 고발’로 가득
‘은밀하고 낯선’ 미국 치부 폭로도 광주비엔날레가 2007~2008년 전세계 주요 전시에 대한 연례보고라고? 그래서 주제가 없다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제3세계 주민, 또는 노동자, 여성 등 약자나 소수자한테 목소리를 부여한 것이다. 지난 5일 공개된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은 온통 그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옛 식민의 껍질을 뒤집어 쓴 채이거나 또다른 식민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아프리카의 도시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데이비드 아디아예,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쓰이는 ‘콜탄’이라는 금속의 80%를 공급하는 콩고 광산의 모습을 민감한 음향과 함께 충격적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 비디오 작가 스티브 맥퀸, 미군이 진주한 아프가니스탄 장인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모방한 카펫을 짜게 해 이를 기록한 코소보 작가 시슬레이 자파,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진과 팔레스타인의 투석기를 연결한 마이다다 등등. 남아공 쓰레기산(잔 헨레), 베네수엘라 혼혈건축(루이 몰리나 판틴), 아프리카인의 목숨건 지중해 항해(아이작 줄리앙), 아시아 성노동자들(레이건 루이)도 마찬가지. 미국 작가들의 작품은 특별한 기준으로 선별됐다. 자국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내부고발자, 또는 흑인의 시선이 그것. 워싱턴주 핵폐기물 저장소, 영원히 살고싶은 욕심을 대변하는 시신 급속냉동보관소, 친미예술을 지원한다는 미 중앙정보국(CIA) 로비에 걸린 추상표현주의 작품 등을 기록한 <미국의 은밀하고 낯선 것들의 목록>(타린 사이먼), 검게 칠해쳐 빛을 내지 않는 “니그로 선샤인”이라는 네온사인과 “난 23년동안 검둥이였어. 완전 절망했어. 전혀, 전혀 옴짝달싹 할 수 없었어”란 글을 쓴 글렌 라이곤의 커다란 실크스크린 작품이 가득 채우고 있다. 부동산 재벌인 뉴욕 현대미술관 이사의 어마어마한 부동산을 공개하는 작품을 선보인 한스 하케는 어떤가. 지도, 사진, 간략한 설명을 하는 그림판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구겐하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개인전이 취소되고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해고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런 가운데서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국제적인 맥락을 부여받는다. 1998년 울산 현대자동차 파업 이후 노조의 하청노동자로 전락한 사내식당 아줌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밥꽃양>도 전시장에서 상영된다. 파업노동자들한테 밥을 해 날라 파업의 꽃으로 추켜세워지다가 노-사 ‘대타협’의 희생양으로 해고된 아줌마들이 “우리가 밥이가?”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남성지배적인 정치·노동판 속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한다. 이승복기념관, 평화의 댐, 남침용 지하땅굴, 전시용 가짜마을 등 안보관광 현장을 기록한 양성윤의 작품, 아파트 건축으로 없어지는 작은 야산들을 장례지내는 고승욱 등은 한국이 이데올로기와 경제적으로 제3세계임을 웅변한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제3세계 정치학을 전공한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했다. 2006~2007년 열린 전시들 중에서 올라푸어 엘리아손, 줄리 메레투, 제프 쿤스 등 유명 작가들의 전시를 고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절 작가 고든 마타 클락(1943~1978)을 만나는 것은 덤. 건물에서 뜯어온 창문 쪼가리와 사진, 기록물들이 전부지만 빈 건물을 조각대상으로 삼은 천재성이 여실하다. 뉴욕의 소호를 미술거리로 만든 주역 중 한 명인 그는 예술인 식당 ‘푸드’를 창립하기도 했다. 그는 집을 둘로 쪼개어 인간의 주거형태를 인류학적으로 보여주거나 더블류(W)자 모양 또는 원뿔형으로 잘라 개미굴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톱을 들고 집을 썰어 스스로 바퀴벌레가 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한다. 전시장의 일부인 대인시장에선 ‘만만한 홍어 가게’, 어린이놀이방, 작가 입주 등 ‘복덕방 프로젝트’가 활기 잃은 재래시장을 북적이게 만들었다. 광주/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약자·소수자 ‘현실 고발’로 가득
‘은밀하고 낯선’ 미국 치부 폭로도 광주비엔날레가 2007~2008년 전세계 주요 전시에 대한 연례보고라고? 그래서 주제가 없다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제3세계 주민, 또는 노동자, 여성 등 약자나 소수자한테 목소리를 부여한 것이다. 지난 5일 공개된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은 온통 그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옛 식민의 껍질을 뒤집어 쓴 채이거나 또다른 식민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아프리카의 도시들을 사진으로 기록한 데이비드 아디아예,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쓰이는 ‘콜탄’이라는 금속의 80%를 공급하는 콩고 광산의 모습을 민감한 음향과 함께 충격적 아름다움으로 보여주는 비디오 작가 스티브 맥퀸, 미군이 진주한 아프가니스탄 장인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모방한 카펫을 짜게 해 이를 기록한 코소보 작가 시슬레이 자파,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진과 팔레스타인의 투석기를 연결한 마이다다 등등. 남아공 쓰레기산(잔 헨레), 베네수엘라 혼혈건축(루이 몰리나 판틴), 아프리카인의 목숨건 지중해 항해(아이작 줄리앙), 아시아 성노동자들(레이건 루이)도 마찬가지. 미국 작가들의 작품은 특별한 기준으로 선별됐다. 자국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내부고발자, 또는 흑인의 시선이 그것. 워싱턴주 핵폐기물 저장소, 영원히 살고싶은 욕심을 대변하는 시신 급속냉동보관소, 친미예술을 지원한다는 미 중앙정보국(CIA) 로비에 걸린 추상표현주의 작품 등을 기록한 <미국의 은밀하고 낯선 것들의 목록>(타린 사이먼), 검게 칠해쳐 빛을 내지 않는 “니그로 선샤인”이라는 네온사인과 “난 23년동안 검둥이였어. 완전 절망했어. 전혀, 전혀 옴짝달싹 할 수 없었어”란 글을 쓴 글렌 라이곤의 커다란 실크스크린 작품이 가득 채우고 있다. 부동산 재벌인 뉴욕 현대미술관 이사의 어마어마한 부동산을 공개하는 작품을 선보인 한스 하케는 어떤가. 지도, 사진, 간략한 설명을 하는 그림판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구겐하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개인전이 취소되고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해고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이런 가운데서 한국작가들의 작품은 국제적인 맥락을 부여받는다. 1998년 울산 현대자동차 파업 이후 노조의 하청노동자로 전락한 사내식당 아줌마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밥꽃양>도 전시장에서 상영된다. 파업노동자들한테 밥을 해 날라 파업의 꽃으로 추켜세워지다가 노-사 ‘대타협’의 희생양으로 해고된 아줌마들이 “우리가 밥이가?”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남성지배적인 정치·노동판 속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한다. 이승복기념관, 평화의 댐, 남침용 지하땅굴, 전시용 가짜마을 등 안보관광 현장을 기록한 양성윤의 작품, 아파트 건축으로 없어지는 작은 야산들을 장례지내는 고승욱 등은 한국이 이데올로기와 경제적으로 제3세계임을 웅변한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제3세계 정치학을 전공한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했다. 2006~2007년 열린 전시들 중에서 올라푸어 엘리아손, 줄리 메레투, 제프 쿤스 등 유명 작가들의 전시를 고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절 작가 고든 마타 클락(1943~1978)을 만나는 것은 덤. 건물에서 뜯어온 창문 쪼가리와 사진, 기록물들이 전부지만 빈 건물을 조각대상으로 삼은 천재성이 여실하다. 뉴욕의 소호를 미술거리로 만든 주역 중 한 명인 그는 예술인 식당 ‘푸드’를 창립하기도 했다. 그는 집을 둘로 쪼개어 인간의 주거형태를 인류학적으로 보여주거나 더블류(W)자 모양 또는 원뿔형으로 잘라 개미굴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톱을 들고 집을 썰어 스스로 바퀴벌레가 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기도 한다. 전시장의 일부인 대인시장에선 ‘만만한 홍어 가게’, 어린이놀이방, 작가 입주 등 ‘복덕방 프로젝트’가 활기 잃은 재래시장을 북적이게 만들었다. 광주/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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