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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애정도 상처가 되는 모녀이야기

등록 2008-09-18 18:21수정 2008-09-18 19:40

연극 ‘금녀와 정희’
여성 연극인들은 많아졌지만 여성주의 계열의 작품들은 많지 않다. 도그마에 갇히기 싫은 예술가들의 분방한 기질, 또 한편에선 남성 중심의 구도에서 자칫 변방으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 공포가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진아는 출발부터 흔들림이나 과도한 자의식 없이 담담하고 일관성 있게 여성주의 계열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결혼한 여자의 사랑에 대한 욕망을 그린 <사랑, 지고지순하다>, 일과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미혼 여성의 불안함을 표현한 <연애 이야기 아님> 등. 그녀는 자기 또래의 여성들을 무대에 세우고 미세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여성의 욕망과 불안한 심리를 탐색해나간다.

신작 <금녀와 정희> 역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살핀 작품으로, 전작들의 계보를 잇는다. 차이가 있다면 전작들이 여성의 내적 혼란을 보여주면서 연극적 표현을 세련되게 시도했다면, 조촐한 시골집이 무대 공간인 이 작품에선 여성들의 관계 맺기에 주목하면서 보다 삶에 근접한 시도를 했고 소박하게 채색한 미루나무와 밤하늘을 배경으로 고졸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통념적인 어머니상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는 보살의 이미지이지만, 아들 선호가 과도한 실제 우리 삶에서 어머니와 딸이 맺는 관계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애틋하면서도 섭섭한 감정이 적당히 배어 있기 때문이다. <금녀와 정희>가 포착하는 지점도 그렇다. 딸 정희는 늙고 사위어가는 어머니 금녀에 대한 애틋함으로 그녀의 노후를 멋지게 포장하고 싶어 외국여행부터 부엌 선반을 새로 바꾸는 일까지 여러 제안을 하지만, 무던하면서 직선적인 어머니는 일방적인 딸의 애정 공세가 부담스럽고 신통찮다. <금녀와 정희>는 그렇게 소소한 일상의 갈등으로 무대를 채우며 애정이 상처가 되는 모녀 갈등에 주목하고, 또 한편 그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꿈이나 분신장면으로 신화적 확장을 꿈꾸며 여성으로 서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그 매력적인 제안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구체적 힘이 너무 찰져서 신화적 지평으로의 확장은 다소 작위적이다.

사족 같지만 작품을 쓰고 연출한 최진아의 기질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그녀의 연극은 대체로 섬세하지만 주관적이고, 구체적인 삶에서 출발하지만 보편적 공감을 자아내기엔 지나치게 작은 세계에 갇혀 있다는 인상을 종종 준다. <금녀와 정희> 역시 모녀의 애증이 잔잔한 공감을 자아내긴 하지만, 자질구레한 일상이나 감정이 너무 큰 힘을 발휘해 관계의 심연까지 닻을 내리지 못했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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