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컬 ‘파이란’
삼류 건달 강재가 목포의 시체안치실에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아내 파이란의 시신을 안고 회한의 울음을 터뜨린다.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앞에 있는 너/ 감은 눈 닫힌 입술 멈춰버린 너의 가슴/ 너의 이름 파이란/ 나의 아내 파이란/ 나의 여자 파이란/ 내겐 하나뿐인 별다섯 바로 너(넌 별다섯)” 언젠가 그가 조직의 인력사무소를 통해 100만원을 받고 호적상 결혼을 해주었던 그 중국 여자 파이란이다. “강재씨는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서툰 한국어로 꾹꾹 눌러쓴 파이란의 편지는 강재에게 몸서리치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 죽어간 한 여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면서 때늦은 후회로 가슴을 후려 친다.
지난 11일부터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 2관에서 첫선을 보인 창작뮤지컬 <파이란>(연출 김규종)은 2001년 최민식과 장츠이 주연의 동명원작 영화가 원작이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중국인 아내 파이란(백란)의 시신을 거두러 가는 삼류 건달 강재의 여행기를 담은 작품이다. 밑바닥 인생을 걷는 한 남자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건너온 한 여자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이란>은 최근 1~2년 사이 국내 뮤지컬의 새로운 경향인 무비컬(영화 원작 뮤지컬)이지만 화려한 ‘쇼’ 대신 ‘드라마’를 선택했다. 원작 영화에서 그랬지만 한번도 만난 적 없으나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위로받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흡인력을 갖췄다. ‘내 고향은 푸른 바다’ ‘잭팟송’ ‘삶은 계란송’ ‘시간이 흐르면’ ‘넌 별 다섯’ 등 포크와 록, 컨트리가 결합된 노래(이현섭 작곡)도 신선하다. 중국어로 듣는 파이란의 노래와 앙상블 배우들(한웅희, 지효진, 고현경, 이지숙 등)의 건달 안무(안무 홍세정) 등도 묘한 매력과 즐거움을 자아낸다. 강재 역의 서범석의 노래와 연기는 힘있고 안정되었으며, 북경에서 날아온 중국 여배우 은유찬(파이란 역)은 가녀린 외모와 분위기가 배역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무대가 간결하다 못해 밋밋한 느낌을 주며, 극 중의 은유찬의 노래와 파이란의 친구 주남의 대사에서는 자막 처리가 필요한 듯했다. 11월 2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1관. (02)744-0300.
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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