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철재상가 2~3층을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로 재현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다큐 작가 안해룡 사진전
도요하시 조선학교 60년
문래예술공단에 옮겨와 비가 추적거리는 서울 문래동 철재상가 단지의 20일 오후. 칙칙한 낡은 건물들이 셔터를 내리면서 쏴한 쇳가루 냄새를 차단할 무렵, 사람들이 하나 둘 두리번두리번 새한철강을 찾아와 우산을 접었다. ‘학교법인 아이치조선학원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 흰 바탕 먹글씨 임시간판이 걸린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지저분한 벽에 10, 20년 단위로 시간을 끊은 흑백사진들이 걸렸다.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에 있는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의 1945년부터 2004년까지의 60년 역사다. 낡은 교사 앞 조회, 가을 운동회, 봄 소풍…. 우리의 옛 시골 초등학교의 가난함과 다를 바 없고, 사진은 소풍이나 학예회 때나 찍는 것이라고 여겼던 점도 똑같다. 이 학교는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한 국어강습소에서 출발했다. 자주학교로서 이곳을 폐쇄하려는 미군정과 일본 경찰들의 물리력에 맞서며 민족교육을 해왔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조선인 됨을 지키기 위해 사립학교보다 더 비싼 학비를 마다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150명이 넘던 학생들은 이제 유치원을 포함해 27명으로 줄어들었다. 계단을 올라 3층 철문을 열면 문래예술공단의 본부이자 전시실을 겸한 ‘랩 39’다. 지금껏 흑백세계가 컬러세상으로 바뀌면서 추억에서 화들짝 깨어난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사진전. 다큐멘터리 작가 안해룡(48)씨가 6년여 동안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를 드나들며 찍은 사진들이 걸렸다. 10월10일까지.(070-7578-5439) 작가는 “조선학교에는 민족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도요하시 지역에 사는 모든 동포들의 삶이 투영된 커뮤니티가 숨쉬고 있었다”고 말했다.
책을 한 아름 든 선생님과 활짝 웃는 어린이. 수업을 시작하려는 것일까,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일까. 까르르 웃음소리와 자애로운 눈웃음이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있다. 긴 생머리의 선생님은 한복을 입었고 아이는 흰 양말을 신었다. 어린이 네 명이 전부인 통합수업. 2학년 동생들이 수업을 하고 3학년 언니는 자습을 한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축구반 아이들. 남자 어린이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성원이 안 돼 다른 팀과 시합을 할 수 없다. 박성대-황재는 3학년-6학년 형제다. 비 오는 날 학교에 모여든 학부모들. 아이들 신발이 촘촘한 신발장, 통합 화장실이 있는 현관에 비닐을 깔고 앉았다. 학부모운영위원회라도 여는 걸까. 잔디가 깔린 옥상에서 과외활동을 하는 아이들 너머로 신칸센 철도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전을 한다면 학교 전체를 다 보여줄 것이다.” 작가의 약속은 새한철강 건물을 거대한 도요하시 초급학교 사진으로 뒤덮고, 옥상에 자그마한 목조 교실을 재현하고, 그곳을 도요하시 학부모들과 서울에 유학온 조선학교 출신 학생들로 채우는 것으로 지켜졌다.
“비 오는 날엔 비가/ 눈 내리는 날엔 눈이/ 때 아닌 모진 바람도/ 창을 들이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할퀴고/ 공부를 못하게 만들어 놓은/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초라하지만 단 하나뿐인 우리 학교/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란다/ 니혼노 가코요리 이이데쓰(일본학교보다 좋다).”
노래를 부르는 18명 유학생들도,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 대표도, 3층까지 계단을 밟아 오르며 선행학습을 한 서울의 관객들도 눈물이 고였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문래예술공단에 옮겨와 비가 추적거리는 서울 문래동 철재상가 단지의 20일 오후. 칙칙한 낡은 건물들이 셔터를 내리면서 쏴한 쇳가루 냄새를 차단할 무렵, 사람들이 하나 둘 두리번두리번 새한철강을 찾아와 우산을 접었다. ‘학교법인 아이치조선학원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 흰 바탕 먹글씨 임시간판이 걸린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지저분한 벽에 10, 20년 단위로 시간을 끊은 흑백사진들이 걸렸다.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에 있는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의 1945년부터 2004년까지의 60년 역사다. 낡은 교사 앞 조회, 가을 운동회, 봄 소풍…. 우리의 옛 시골 초등학교의 가난함과 다를 바 없고, 사진은 소풍이나 학예회 때나 찍는 것이라고 여겼던 점도 똑같다. 이 학교는 우리말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한 국어강습소에서 출발했다. 자주학교로서 이곳을 폐쇄하려는 미군정과 일본 경찰들의 물리력에 맞서며 민족교육을 해왔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조선인 됨을 지키기 위해 사립학교보다 더 비싼 학비를 마다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150명이 넘던 학생들은 이제 유치원을 포함해 27명으로 줄어들었다. 계단을 올라 3층 철문을 열면 문래예술공단의 본부이자 전시실을 겸한 ‘랩 39’다. 지금껏 흑백세계가 컬러세상으로 바뀌면서 추억에서 화들짝 깨어난다.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사진전. 다큐멘터리 작가 안해룡(48)씨가 6년여 동안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를 드나들며 찍은 사진들이 걸렸다. 10월10일까지.(070-7578-5439) 작가는 “조선학교에는 민족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도요하시 지역에 사는 모든 동포들의 삶이 투영된 커뮤니티가 숨쉬고 있었다”고 말했다.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 김구미 교사가 복도를 지나가면서 조마유 어린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안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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