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나이젤 홀(65·사진)
영국 조각가 나이젤 홀, 11월까지 국내 전시
“나에게 드로잉이란 보고 생각하고 발견하고 기록하고 거르는 과정이다.”
풍경 속에서의 그때 그 느낌을 원, 원뿔, 직선의 조합으로 표현해온 영국의 조각가 나이젤 홀(65·사진)이 자신의 전시회에 맞춰 한국에 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공원 조각이 인연이 된 이후 이번이 세번째다.
철, 알루미늄, 나무 등을 이용한 그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단순한 선이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미묘하고 복잡한 형태가 선과 그림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작품 주위를 돌아가면서 보면 각도에 따라 아주 다른 모양이다. 그 비밀은 원과 원뿔. 정면에서 보면 둥글지만 각도를 달리하면 무수한 타원으로 변주하다가 궁극에는 직선으로 귀화한다. 그의 작품은 런던 테이트갤러리,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뉴욕 모마 등 유명 기관에 소장돼 있다.
지난 22일 만난 홀은 20년 만에 제주에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스케치한 그림과 사진을 보여주었다. ‘3차원 드로잉 조각가’답게 사물과 풍경은 윤곽선으로 파악돼 있었다. 그가 좋아하는 때는 눈 온 뒤, 해질녘과 동틀 무렵, 달빛 강한 밤, 햇빛 쨍쨍한 한낮 등 윤곽과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어 풍경이 시각적으로 미니멀하게 변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파악된 풍경들은 휴대용 스케치북에 담겼다가 몇해 동안의 숙성과정을 거친 뒤 조각작품으로 구현된다. 40년 가량 해온 그의 작업 방식이다.
20년 전 워커힐에서 내려다 본 한강을 모티브로 한 ‘강 시리즈’, 아이들이 둥글게 앉아 귓속말을 전달해 끝말이 어떻게 변했나를 확인하는 게임에서 착안한 ‘차이니스 휘스퍼’, 물의 도시에서 베네치아의 느낌을 뱃사공이 무한대 기호(∞)처럼 노젓는 모습으로 구현한 ‘베네치안 트위스트’ 등. 그는 재현이 아닌 느낌임을 누차 강조하며 시 쓰기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어려서 외할아버지한테서 배운 돌조각도 바탕이 됐다. 돌을 쪼을 때의 무한집중. 한번 정을 내려치면 공간, 각, 그림자 등 세 가지가 한꺼번에 만들어지기 때문. 그 탓인가, 입체 타원의 면에서는 부드러움이, 면과 면이 만난 각에서는 단호함이, 기울어짐이 빚어내는 그림자의 변이에서 섬세함이 드러난다.
서울 송파구 소마미술관에서 열리는 ‘88올림픽 개최 20돌 기념전’(11월1일까지)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의 개인전(10월17일까지)에서 그의 작품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여숙화랑 제공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박여숙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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