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100년만에 다시 온 ‘은세계’ 소리광대들에 환한 조명등

등록 2008-10-02 18:50수정 2008-10-06 11:52

오는 11월15일은 한국 최초의 신연극 <은세계>가 100년 전 공연됐던 날이다. 1908년 당시 서울 도심 새문안교회 터에 있던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극장 ‘원각사’가 그 역사적인 무대였다.

<은세계>의 원작은 친일 개화파 이인직(1862~1916)이 발표한 같은 이름의 신소설이다. 강원도에서 구전되는 ‘최병도타령’을 바탕으로 봉건 지배층에 항거하는 민중의 반항, 개화사상 등을 담아냈던 원작을 이인직이 다시 창극 형태로 꾸민 것이다. 강릉 농민 최병도가 관찰사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실화로 줄거리 틀을 잡고 최병도의 자녀들이 미국으로 유학 간 뒤 10년 만에 돌아와 어머니와 재회하는 내용을 잇댔다.

친일파 이인직 원작이지만
반봉건 ‘최병도타령’ 바탕
한국 첫 신연극 주역 활약 담아

지난 9월29일 서울 정동극장 대공연장에서 <은세계>의 장면들을 연습 중인 극단 미추의 배우들과 국악인들. 왼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가 손진책 연출가.
지난 9월29일 서울 정동극장 대공연장에서 <은세계>의 장면들을 연습 중인 극단 미추의 배우들과 국악인들. 왼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이가 손진책 연출가.
당시 주연은 명창 임방울의 외삼촌이던 당대의 스타 소리꾼 김창환(1854~1927). 명창 강용환, 송만갑, 이동백 등이 연출과 연기를 맡아 화제가 됐다. 극에 몰입한 일부 관객들의 촌극도 있었다. ‘혜천탕 주인 윤계환씨 등 칠인’이 공연 중 일어나 극중 강원 관찰사의 횡포에 항의하다가 순사에게 끌려나가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황성신문> 1908년 12월1일치) 최병도가 탐관오리의 뭇매에 죽어나갈 때 관객들이 그의 목에 엽전 꾸러미를 매어줬을 정도로 극은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극의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었다. 전반부의 반봉건적 분위기와 달리 후반부에서 민중을 계몽 대상으로 타자화한 점이나 고종의 강제 폐위를 옹호하는 내용 등이 비판의 대상이었다.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였던 작가 이인직의 친일적 성향이 배어나오는 대목이다.

후일담은 쓸쓸했다. 첫 무대 원각사는 1909년 폐쇄된 뒤 1914년 불에 타 사라졌다. 전처를 버리고 일본 여자와 결혼했던 이인직은 1916년 신경통 치료 중 숨졌다.

영욕이 엇갈린 이 신극이 100년만에 무대에 다시 오른다. 10월3일 서울 정동극장에서 극단 미추가 공연하는 <은세계>다. 원각사를 복원한다는 취지로 지어진 정동극장이 원각사 설립 100년과 한국 연극 100년을 기념하고자 극단과 손잡고 마련했다. 인기 작가 배삼식(38)씨가 <은세계> 대본을 재창작하고, 손진책(61) 극단 미추 대표는 연출을 맡았다.

2008년판 <은세계>는 특이한 이중구조다. 100년 전 원각사에서 <은세계>를 준비했던 소리광대들의 이야기를 주요 축으로 삼고 대본을 쓴 이인직의 삶과 행적을 또다른 축으로 삼았다. 1908년 <은세계> 공연은 자연스럽게 극중극이 된다. 공연장 안팎도 옛 원각사 공연장 형태인 원뿔형 극장 이미지를 살릴 계획이다.

지난 9월29일 국립극장 대연습실에서 만난 배우와 제작진은 매우 긴장한 눈치다. 이인직의 전처 역을 맡은 배우 김성녀(58)와 초연 당시의 <은세계> 연출자 강용환 역을 맡은 김종엽, 이인직 역의 정태화 등 극단 배우들을 비롯해 국립창극단의 왕기석(김창환 역), 소리꾼 한승석(이동백 역), 김성예(허금파 역) 등 함께 출연할 국악인들이 종일 연습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연출가 손씨는 신경이 곤두섰다. “호홉으로 굴려라” “호흡으로 당겨라”라는 그의 집요한 주문에 베테랑 배우 정씨가 혼쭐이 난다. 몸살 난 김성예씨는 “가만히 서 있어도 뼈가 쑤시고 속에서 땀이 난다”고 했다.

손진책 연출가는 “<은세계> 공연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아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인직이 <은세계>의 대본을 썼지만 공연 준비에 거의 참여하지 않아, 실제로 대본을 가지고 연습하고 공연을 올린 것은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등 당시의 소리광대들이었다”면서 “이인직에게 과도하게 쏠려 있는 한국 연극의 효시라는 명예를 100년 전 소리광대들에게 되돌려주고 싶다”고 작품 의도를 밝혔다. 19일까지. (02)751-1500.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