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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러시아극서 아르헨극까지 ‘체호프의 바다’에 빠지다

등록 2008-10-07 19:25

[리뷰] ‘바냐 아저씨’ ‘비련의 여인…’
마치 체호프의 가을 같다. 가을이면 메가톤급 규모의 축제로 분주한 연극계에, 올해는 체호프의 작품이 유난히 눈에 뜨인다. 구태환의 <벚꽃동산>, 러시아 말리극장의 <세 자매>와 타바코프극단의 <바냐 아저씨>가 원전에 충실한 정통 체호프 공연이라면, 우크라이나의 야외극 <벚꽃동산>과 <바냐 아저씨>를 아르헨티나적 현실로 형상화한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는 현대화를 시도한 경우다.

여기에 체호프의 부인이 체호프를 회상하는 칠레의 현대극 <네바>까지 가세하니, 이런 경사가 있나.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현대극의 메카로 추앙받으면서도 공연 한 편 보기 힘들던 체호프의 작품이 정통과 실험, 국내외를 막론하고 만개한 것이다.

그중 특히 인상적인 공연은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 <비련의 여인을 바라보는 스파이>였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또 한 경향은 장식을 제거한 본질주의인데, 이 작품 역시 이 경향에 부합한다. 연출가 다니엘 베로네세는 모서리를 부각한 한 평 남짓의 좁은 공간에 탁자와 의자 두셋만을 사용한다. 유일하게 장식이 있다면 뒷무대의 조그마한 들창으로 무대의 행동을 엿보는 배우들의 모습을 연출한 정도?

공간의 장식성이 최소라면 최대가 되어야 할 것은 배우들의 존재감과 연기력이다. 그 점에서 아르헨티나 배우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실 수다스러울 정도로 빠르고 기름진 스페인 말과 격한 템포, 체호프의 원작에 또다른 작품을 인용한 현대화는 공연 초반에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들의 에너지와 집중력은 그 당혹감을 깨끗하게 씻어주었고, 삶의 무력함을 감내하는 거대한 존재감이 객석을 압도했다.

체호프의 본향인 러시아에서 원정 온 두 편의 연극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 시간에 이르는 긴 호흡이나 의상부터 무대장치에 이르는 품격은, 대극장 연극조차 날림으로 짓는 한국 연극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아직 30대의 젊은 카르바우스키스가 연출한 <바냐 아저씨>는 희극성과 비극성을 유연하게 교차시켰고, 창문을 열고 닫는 사소한 행동만으로 능청스럽게 소통의 욕망과 좌절을 구축했다. 반면 세계국립극장축제 초청작인 말리극장의 <세 자매>는 배우들의 다소 정형화한 연기와 거대한 극장 공간이 주는 위축감으로 기대만큼의 효과는 내지 못했다(해오름 극장). 축제의 성공을 위해서는 적절한 극장 공간에 대한 고민도 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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