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 송현숙(56)씨의 전라도 사투리는 토박이보다 더 토속적이다. 오는 26일까지 서울 학고재화랑(02-720-1524)에서 여는 ‘단숨에 그은 한획’ 개인전에 맞춰 서울에 온 그의 말투는 고스란히 36년 전 담양 사투리 그대로다. 22살에 ‘파독 간호사’로 한국을 떠난 담양 처녀는 원숙한 화가가 되었지만, 사투리는 고립된 언어의 섬에서 옹이진 말결을 보존했기 때문이다.
그림은 사투리보다 더 심하다. 한국의 화가들이 서양물을 따라 흘러내리는 동안 송씨는 36년 전 정서를 그대로 간직했다. 아니, 어머니, 할머니 대까지 세월을 거슬러 올랐다. 들 가운데 농막의 한 귀퉁이, 바지랑대 빨랫줄 또는 횃대에 늘어뜨린 삼베, 아가리가 벌어진 항아리 등등. 획을 셀 수 있는 반투명 막 이면에 고향 담양에서 산 여인 3대의 이야기가 담겼다. 팔다리 척척 걷어붙이고 화폭을 가로지른 나무판에서 넓적한 풀비의 안료를 털어내는 그는 영락없이 길쌈하는 아낙이다. 할머니가 그랬듯, 어머니가 그랬듯. 그가 빈 화폭에 풀을 먹이면 횃대와 빨랫줄에 삼베와 무명이 척척 걸린다. 그게 송현숙의 그림이다.
독일의 ‘코쟁이들’ 사이에서 겪은 설움, 민주화 운동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추방됐던 경험, 세살 위 오빠가 논일을 하다 감전사한 아픔 등의 막막함은 그림에서 연녹색, 또는 검은 바탕이 되었다. 여기에 풀 대신 달걀노른자에 안료를 섞은 템페라로 획 하나 획 둘 풀어낸 것이 고향의 기억들이다. 솟대 위 새인 듯한 흰 코고무신, 부목을 댄 부러진 장대의 이미지 등에는 한때 이주노동자였던 자신의 기억 외에 일본군에 끌려갔던 위안부 할머니, 똥물을 뒤집어썼던 동일방직 노동자에 대한 연대의식이 배어 있을 터이다.
기억은 정제되고 형태는 단순화되어 획 하나하나에 몸의 움직임이 그대로 담겼다. 붓결에는 작업실의 고요와 작가의 숨소리, 붓소리가 실렸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팔-다리-어깨가 저려 몸으로 그림을 그렸음을 안다고 했다. 요즘은 덜 마른 바탕에 덧칠하던 방식을 바꿔 완전히 마른 바탕에 획마다 붓을 갈면서 전체적으로 깔끔해졌다.
그가 그린 <인천 동일방직 노동자들에 대한 똥물사건>(1979)은 서경식 교수를 경유해 서울 인사동 평화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그는 1970년대 초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남편 요헨 힐트만 전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교수와 독일 엘베강 남쪽 하르부르크 근방에서 산다. 남편은 아내가 떠나지 못하도록 대밭을 꾸몄고, 전생에 한국 또는 동양의 고승이었을 거라며 한국 불교미술에 심취해, 운주사 천불천탑에 관한 책 <미륵>(1987)을 썼다.
임종업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