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홍정길 대표 20년 컬렉션
한 작가의 회고전은 관람객을 감동시킨다. 평생 동안 작품에다 쏟아낸 예술혼을 한 날 한 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일원동 밀알미술관(02-3412-0061)의 ‘아 함창연’ 전에서는 이런 감동 외에 특별한 감회가 더 있다. 주인공이 북한 공훈예술가다! 출품작도 무려 164점이다. 도대체, 왜, 어떻게 북녘작가 회고전이 남쪽에서 열리는가.
함창연(1933~1999)은 북한의 대표적인 판화 작가. 폴란드 바르샤바 미술대학 유학 중 모스크바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입상했고, 비엔나 국제미술전람회 동메달, 라이프치히 세계동판화콩쿠르 금메달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귀국 뒤 35년 동안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제자를 가르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다. 정통 유럽 판화의 기법을 섭렵한 그의 작품은 다양한 기법과 표현으로 기존 토속 작가들의 민속적·통속적 화풍 가운데 단연 발군이었다. 석판화, 드라이포인트(동판에 바늘로 이미지를 새기는 기법), 에칭(금속판에 밑그림을 그린 뒤 산으로 부식시켜 이미지를 만드는 기법), 아쿼틴트(금속판에 송진가루를 뿌린 뒤 부식시켜 미세한 톤 효과를 얻는 기법), 목판 등의 판화기법들을 자유롭게 구사했고, 정물, 풍경, 인물화 등에서도 사회주의 리얼리즘, 인상주의, 표현주의 등의 다양한 사조를 보여주었다. 1980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전시작들 가운데 <북간도에 이주하는 동포> <압록강 가에서> 등은 사회주의 리얼리즘, <기관사 빠브카> <강가에서> 등은 표현주의, <어촌> <두나이강 류역을 따라> 등은 인상주의 경향을 띤다. <거제도> 4부작 등 국제판화대회 수상작들과 말년의 유화 작품 <자화상> 등도 보인다. 특히 <거제도> <매복> 등의 작품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포로가 됐던 북한청년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다.
함창연 컬렉션 뒤에는 밀알미술관 홍정길 대표가 있다. 남북나눔본부 대표이기도 한 그는 평양을 수십 차례 오가면서 꾸준히 그림들을 수집했다. 북녘작가에 처음 눈길을 준 것은 1989년. 중국 옌지(연길)의 과학기술대학 설립을 지원하면서 후원자들에게 줄 선물 삼아 북녘화가의 작품을 구입했다. 미술시장 없는 북한 작가들을 돕는 길이기도 했다. 그의 관심은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함창연으로 모아졌다. 작가의 자취를 찾아 중국, 러시아를 방문하고 작가가 유학했던 폴란드를 찾아가 대학 학적부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모으고 모은 것이 430점. 미술 서적 16권을 냈지만 자신의 화첩을 갖지 못했던 작가를 위해 홍 대표는 1999년 작품 42점으로 화첩을 만들어 전달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을 보지 못한 채 타계했다. 홍 대표는 “이번에 284쪽 분량의 제대로 된 화집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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