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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날아갈듯 ‘춤곡’으로 바꿔놔

등록 2008-10-19 18:10수정 2008-10-19 21:27

사라장(장영주)
사라장(장영주)
[리뷰] LA 필하모닉-장영주 협연 들어보니
대개 핀란드 하면 ‘노키아’와 ‘자일리톨’을 떠올릴지 모르나, 작은 나라 핀란드가 국력 신장과 국민 통합의 밑거름으로 삼은 것은 음악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가 있다. 그 씨앗이 터져 오늘날 핀란드 출신의 음악가들이 세계무대에서 이 나라의 혼을 전하는 숲을 이뤄가고 있다.

21세기 세계 유수의 악단에서 핀란드 지휘자의 이름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요르마 파눌라의 제자인 에사 페카 살로넨, 오스모 벤스케, 유카 페카 사라스테, 사카리 오라모 등이 유럽과 미국에 탄탄한 핀란드 음악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좌장이랄 수 있는 에사 페카 살로넨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해 18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연주를 했다. 전반부에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것은 사라장(장영주)이었다.

마침 필자가 진행하는 한국방송 에프엠의 에서는 일요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곡을 방송했다. 연주자는 199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자인 핀란드의 페카 쿠우시스토였다. 워낙 이 곡에 정통한 쿠우시스토는 섬세하고 유려한 음색으로 무난한 연주를 들려줬다.

그에 비해 18일 연주회에서 장영주는 이 음악을 하나의 춤곡으로 바꿔 놓았다. 꺾일 듯하지만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비상하는 연주에 전율이 등골을 오르내렸다. 장영주의 독창적인 연주가 쿠우시스토보다 훨씬 귀에 감겼다. 로스앤젤레스 필의 탄탄한 앙상블과 살로넨의 자로 잰 듯한 지원은 모두 장영주를 위한 것이었다. 잠시 핀란드를 잊었다.

그러나 2부가 시작되자 주인공은 다시 살로넨으로 바뀌었다. 동화를 소재로 한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에서 그는 이 할리우드 악단이 가진 만화경과 같은 상상력을 흠씬 뽑아냈다.

공연의 백미는 앙코르인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였다. 살로넨에게 이 곡은 ‘애국가’와 같이 감개무량한 음악이다. 시벨리우스가 없었다면 그는 작은 나라 지휘자에 불과했겠지만, 그 세계적인 작곡가 덕분에 살로넨의 음악성이 더욱 인정을 받는 것이다.

신출귀몰하는 연주를 들려주는 장영주에게 아쉬운 것이 바로 이런 우리 ‘작곡가’이다. 장영주가 시벨리우스를, 차이콥스키를, 브람스를 제아무리 잘 연주해도 그는 외롭다. 그는 우리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할 때 더 큰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작곡가는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기 이전에 우리의 음악적인 모국어로 작품을 써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 명의 작곡가가 있을 때 열 명의 지휘자가, 백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더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낀 공연이었다.


정준호/음악평론가

(한국방송 에프엠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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