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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입센 연극 ‘페르귄트’

등록 2008-10-28 18:46

야외극 실내공연 ‘아쉬움’
배우 존재감·음악 환상적
근대 연극을 열었다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작품을 만날 행운의 기회는 많지 않다. 그나마 연극사에서 언급되는 사실주의 대표작들은 이따금 볼 수 있지만, 그 범주를 넘어서면 백지상태에 가깝다. 입센 특유의 방대한 구조와 사유도 소화하기 어려운데,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순간 상징과 환상의 구축이라는 또다른 난제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초청작 <페르귄트>(10월24~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공연 시작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선 제대로 공연되지 않던 입센의 낭만주의 계열 시극인데다 그의 본향인 노르웨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진 이 야외극은 작품 속에 녹아 있는 북유럽의 신화와 자연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국내 공연은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공연되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섭섭함이 존재하는 공연이었다. 우선 섭섭함. <페르귄트>는 규모가 큰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었고, 대규모의 야외극을 일정 부분 소화하기는 했다. 주로 빈 무대였지만, 수십 명의 요정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무대 위로 자동차가 직접 들어오는 장면을 무리 없이 연출하였다.

그럼에도 노르웨이 골로 호숫가에서 공연한 야외극을 실내극장으로 도입할 경우, 자연과 일치되었던 공연의 특성이 균열을 일으킬 것은 당연지사였다. 환상적인 트롤과 산사람들이 등장하는 <페르귄트>에서 자연은 극의 환경이자, 어쩌면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연출은 아름다운 자연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며 관객들을 위로했지만, 실내극장으로 온 <페르귄트>는 주인공이 빠진 공연처럼 밋밋했고 정교한 조명 아래에서 수십 명이 움직이는 장면은 때로 어수룩해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성공. 입센 공연의 결핍에 허덕이는 국내에서 <페르귄트> 공연은 그럼에도 여전히 주목할 만했다. 난해하고 관념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원작의 환상성이 얼마나 풍요로운 연극성으로 연출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고, 다산의 여신처럼 뚱뚱한 몸매를 드러낸 산처녀들과 기묘한 복장의 정령들은 에스에프물에 익숙한 관객들을 유쾌하게 사로잡았다. 게다가 해오름극장의 빈 공간을 채우던 배우들의 거대한 존재감과 노르웨이의 작곡가 에드바르 그리그(1843~1907)의 아름다운 음악!

글을 쓰면서 나는 <솔베이지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그리그의 아름다운 음악은 시간을 건너뛰어 페르귄트 같은 우리를 위로한다. 욕망을 좇느라 한없이 피곤한 인생의 끝에, 제발 그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위로가 건네지길.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사진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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