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1967년)
세상을 바꾼 노래
49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1967년)
49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1967년)
“한 알은 네 키를 크게 만들어주고/ 또 한 알은 작게 만들어줄 거야.”
그룹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화이트 래빗>은 동화 속의 마법 같은 구절을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앨리스에게 물어봐. 그녀는 알고 있을 테니까.”
루이스 캐럴의 판타지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빌려 마(법의 알)약의 효과를 노래함으로써,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1967년 사이키델릭의 성도 샌프란시스코에 모여든 젊은이들을 ‘사랑의 여름’(서머 오브 러브)으로 인도했다. 대중음악을 전대미문의 ‘이상한 나라’로 이끈 ‘하얀 토끼의 발자국’이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은 1960년대 사이키델릭 문화의 선명한 방점이다. 그들은 사이키델릭 밴드로서는 처음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했고, 맨 먼저 텔레비전에 출연했으며, 최초로 유럽에 진출했다. 그들의 성공을 통해 사이키델릭 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전역으로, 다시 전세계로 번져나갔던 것이다. <화이트 래빗>과 그 곡이 수록된 앨범 <서리얼리스틱 필로>가 바로 기폭제였다. 그래서 비평가 크리스 스미스는 “<서리얼리스틱 필로>가 발표되었을 때, 그것은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전체 언더그라운드 음악계가 세상을 향해 메가폰으로 외친 함성과 같았다”고 평했다. “그것은 ‘사랑의 여름’에 벌어진 첫 번째 대형사건이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 ‘소퍼모어 앨범’(2집)인 <서리얼리스틱 필로>를 통해 사이키델릭 록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새로이 합류한 보컬리스트 그레이스 슬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재니스 조플린과 함께 ‘최초의 여성 록 보컬리스트’로 첫손 꼽히는 그는 인형의 얼굴과 마녀의 음성과 장부의 배포를 한몸에 내재한 기이한 피조물이었다. 비평가 아리엘 스워틀리가 그를 가리켜 “그 이름마저도 완벽했다. 우아한 위선자: 물렁거리는 금속, 고전적인 플라스틱”이라고 칭한 것은 그런 연유다. 준 프로 밴드 ‘그레이트 소사이어티’에서 활동하던 그레이스 슬릭은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승무원으로 탑승하는 동시에 강력한 엔진까지 탑재시켰다. 이전 밴드에서 자신이 만들고 불렀던 노래 <화이트 래빗>을 가져왔던 것이다. 빌보드 싱글 차트 톱10에 오른 이 노래야말로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고공비행을 추진시킨 폭발적인 원동력이었다. 중동 색채의 선율이 <볼레로> 양식의 구조를 따라 점진 상승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화이트 래빗>은 그 자체로 약물의 효과를 음률화한 도상과 같았다. 거기에 그레이스 슬릭의 주술적인 보컬과 불길한 분위기의 ‘스네어 드럼 비트’(합주의 중심을 잡아주는 작고 납작한 드럼의 비트)를 덧씌움으로써 이 노래는 청자를 ‘충만한 정신’(마인드 앳 라지)의 영역으로 밀어 넣었다.
<화이트 래빗>이 무조건적으로 약물을 찬양했던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1960년대 시대 상황이 요구하던, 각성에 대한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하얀 토끼 문신의 여자를 따라간 주인공이 파란 약과 빨간 약 사이에서 운명의 갈림길에 직면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초반 플롯을 보라. <화이트 래빗>의 메시지를 제대로 포착하여 알레고리로 삼은, 창조적 변용의 좋은 예다.
박은석/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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