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환 개인전 ‘변화’
중견 작가 오수환씨는 정자가 있다. 마음에 지은 ‘관풍정’(觀風亭). 그는 그곳에서 바람을 본다. 허공을 휘휘 맴돌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흔들기도 하고, 풀잎에 맺히기도 하는 바람. 바람은 선으로 스케치북에 채집된다. 그가 채집하는 것은 바람뿐 아니다. 땅에 떨어진 새 발자국과 나뭇가지, 벌레 먹은 나뭇잎 등등. 관풍정에서 보는 자연은 선으로 구현된다. 선은 면에 이르기 이전의 상태. 면이 구체적인 것을 표현하기에 맞춤한 반면 선은 구체 이전의 것, 즉 정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언어다. 오 화백이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경기도 전곡리 등의 유적지를 돌면서 선사 이전의 시대정신을 채집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원시 공동체. 그때는 재산의 사유화에 따른 계급이 출현하기 이전. 물가 언덕바지 마을 주민들은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분배하던 때. 그가 채집한 ‘선한 정신’은 선 형태를 띤다. 당대 빗살무늬(즐문)토기 문양이 선이었던 것처럼. 그는 세살배기 손녀한테서 선사의 자취를 발견하기도 한다. 손녀가 할아버지한테 부치는 글자 이전의 그림편지에는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가 말하는 행복은 결국 자유로움, 다시 말해 유위로부터의 자유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컬러 바탕에 먹색 선의 자취다. 바탕은 굵은 왕복 붓질이 그대로 남아 면이 되기 이전의 모양이다. 그 위에 검은 자취는 선이라기보다 몸의 흔적이다. 화폭도 어른 키만해 딱 맞다. 붓끝에 응집된 것이 잠깐 동안 화폭에 토설하고 지나간 뒤끝은 초서처럼 꿈틀거림, 몽글거림, 뒤엉킴 등으로 드러나고 때로는 흩뿌려지고, 튀기고, 흘러내린다. 정신이 어디 그런 것뿐이겠는가. 천천히 머물면서 우뚝 서기도 하고 좌우로 삐치기도 하고 낚싯바늘처럼 홀치기도 한다. “이성에 함몰돼 기계처럼 사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감성을 회복해 균형을 이뤘으면 좋겠다.”
오씨의 그림 앞에서 어릴 적 따뜻한 냇가에서 고무신을 말리던 기억이나 지리산 치밭목 밤바람 소리를 떠올리는 것은 화폭에 밴 작가의 순수성이 전사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은 전염성이 강하다. 그의 개인전 ‘변화’는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720-1020)에서 11월16일까지 열린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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