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춰온 연출가 강영걸(왼쪽), 극작가 이만희 콤비가 자신들의 옛 작품 <피고지고 피고지고>를 14일부터 다시 무대에 올린다.
‘피고지고…’ 이만희 작가·강영걸 연출가
우리말의 묘미를 가장 절묘하게 대사에 살린다는 극작가 이만희(54)씨. 그에게는 우리말의 정신과 멋을 무대 위에 잘 살려내는 ‘지음’(知音)이 있다. 연출가 강영걸(65)씨다. 두 사람은 1990년 이씨의 작품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로 처음 만난 뒤 <불 좀 꺼 주세요>(1991년), <피고지고 피고지고>(1993년) 등 연극 5편을 함께 만들었다.
강영걸이 본 이만희 “언어선택 참 잘해…애늙은이라 농담”
이만희가 본 강영걸 “말의 내공 담는 연출력…스승같은 분”
90년대 이래 연극판의 화제작을 줄줄이 만들어낸 두 콤비가 그들의 공동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는 <피고지고 피고지고>를 14~28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린다. 국립극단이 2008년 시즌을 마무리하는 우수 레퍼토리 특별공연. 다섯번째 재공연을 앞두고 두 사람은 국립극단 3층 연습실에서 배우들과 땀을 흘리고 있다.
“처음 작품을 읽고 작가한테 ‘애늙은이네’라고 농담한 적이 있어요. 그 정도로 인생을 산 폭이 깊은 사람이에요. 게다가 언어 선택을 참 잘해요. 형이상학적인 말을 안 쓰면서 형이상학을 이야기하죠. 생활 이야기 속에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어요. 그게 이만희의 독특함이죠.”(강영걸)
“강 연출가는 언어의 내공이 있어요. 말도 사건 못지않게 기승전결과 절정이 있는데, 말의 소중함을 잘 알고, 그 소중함을 무대의 활력으로 이끌어내는 힘과 연출력이 있어요. 스승 같은 분이죠.”(이만희)
두 사람은 “언어를 소홀히 다루는 국내 연극 풍토에서 우리말을 깊이 있게 다룰 줄 아는 지기를 만났다는 게 행운”이라고 입을 모았다.
<피고지고…>는 도박, 사기, 절도, 밀수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세 노인이 땅속 어딘가 묻혀 있다는 보물을 찾아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담았다. 신라 고승 혜초의 서역 기행기 <왕오천축국전>에서 이름을 따온 세 주인공 왕오(이문수), 천축(김재건), 국전(오영수)은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만난 혜초 여사로부터 신라의 보물이 묻혔다는 절터 얘기를 듣고, 인생의 마지막을 절터(돈황사) 도굴에 걸고 탐험을 떠난다. 지난 93년 초연 때부터 열광 속에 연장 공연에 들어갔던 이 작품은 98년 미국 뉴욕 특별 공연을 했고, 2001년에는 초연 때 크게 줄였던 원작 분량을 거의 되살려 재공연 무대를 펼친 바 있다. 두 사람은 특히 이번 무대에서 배역과 실제 나이가 비슷해진 배우들에 기대를 걸고 있다. “초연 때부터 출연한 개성파 배우 오영수(65), 김재건(62), 이문수(60)씨가 주인공입니다. 15년 세월을 벼려서 더욱 깊어진 몸짓을 보여줄 겁니다. 저희들과 오래 무대 여정을 같이했던 이들이라 작품에 더 애착이 간다고들 합니다. 홍일점 격인 난타 역의 계미경씨에게도 <햄릿><산불> 등에서 보여준 개성 연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노년에 들어선 두 콤비의 앞으로 일정이 궁금했다. 이만희씨는 “권총 자살을 결심한 노철학자가 죽기 전 1시간30분 정도 지난날을 회상하는 모노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풀어내는 섬세하고 높은 경지의 이야기극이라 쉽게 써지지 않을 것 같다”고 귀띔하는 순간 연출가 강씨의 눈이 빛났다. 강씨는 2005년 식도암 수술을 한 이후 지금도 투병 중이지만, 작품 욕심은 누구 못지않다. “이만희 작가에게 ‘당신의 작품은 결국 모두 내가 연출할 것’이라고 했어요. 내년에 <돌아서서 떠나라>를 같이 하자고 약속했죠. <저물어 어두운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딜 가오>는 워낙 대작이라 제작사가 나서지 않지만 꼭 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이만희가 본 강영걸 “말의 내공 담는 연출력…스승같은 분”
<피고지고…>는 도박, 사기, 절도, 밀수 등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세 노인이 땅속 어딘가 묻혀 있다는 보물을 찾아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담았다. 신라 고승 혜초의 서역 기행기 <왕오천축국전>에서 이름을 따온 세 주인공 왕오(이문수), 천축(김재건), 국전(오영수)은 무교동 낙지골목에서 만난 혜초 여사로부터 신라의 보물이 묻혔다는 절터 얘기를 듣고, 인생의 마지막을 절터(돈황사) 도굴에 걸고 탐험을 떠난다. 지난 93년 초연 때부터 열광 속에 연장 공연에 들어갔던 이 작품은 98년 미국 뉴욕 특별 공연을 했고, 2001년에는 초연 때 크게 줄였던 원작 분량을 거의 되살려 재공연 무대를 펼친 바 있다. 두 사람은 특히 이번 무대에서 배역과 실제 나이가 비슷해진 배우들에 기대를 걸고 있다. “초연 때부터 출연한 개성파 배우 오영수(65), 김재건(62), 이문수(60)씨가 주인공입니다. 15년 세월을 벼려서 더욱 깊어진 몸짓을 보여줄 겁니다. 저희들과 오래 무대 여정을 같이했던 이들이라 작품에 더 애착이 간다고들 합니다. 홍일점 격인 난타 역의 계미경씨에게도 <햄릿><산불> 등에서 보여준 개성 연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노년에 들어선 두 콤비의 앞으로 일정이 궁금했다. 이만희씨는 “권총 자살을 결심한 노철학자가 죽기 전 1시간30분 정도 지난날을 회상하는 모노드라마를 쓰고 싶다”고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풀어내는 섬세하고 높은 경지의 이야기극이라 쉽게 써지지 않을 것 같다”고 귀띔하는 순간 연출가 강씨의 눈이 빛났다. 강씨는 2005년 식도암 수술을 한 이후 지금도 투병 중이지만, 작품 욕심은 누구 못지않다. “이만희 작가에게 ‘당신의 작품은 결국 모두 내가 연출할 것’이라고 했어요. 내년에 <돌아서서 떠나라>를 같이 하자고 약속했죠. <저물어 어두운 날에 옷 갈아입고 어딜 가오>는 워낙 대작이라 제작사가 나서지 않지만 꼭 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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