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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헌집 대들보 바다에 둥실

등록 2008-11-06 19:29

조각가 심문섭 12년만의 국내전
나무·돌·흙·쇠에 내재하는 물성 드러내
중국 철거된 집서 나온 재료 모아 작품으로

12년만이다. 해외로만 돌던 조각가 심문섭(66)씨가 서울에서 전시회를 연다. 큰 화랑인 서울 소격동 학고재와 사간동 갤러리 현대 두 군데서. 그동안 국내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들과 몇가지 새 시도를 선보이려니 그만큼 공간이 필요한 셈이다.

심씨는 나무, 돌, 흙, 쇠에다 최소한 손을 댐으로써 물성 자체에 내재하는 비밀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현전> <토상> <메타포> <제시> 등이 그것이다.

이번에 보여줄 작품들은 <현전>과 <제시>. 소재에 작가의 손길이 얼마나 갔는가의 차이로 구별된다. <현전>이 소재의 물성에 가깝다면 <제시>는 조작 쪽으로 기운 편이다. 하지만 최소 개입의 원칙은 같다. 이전 작품과 차이가 있다면 대나무가 추가된 점. 나무와 돌로 된 작품에 댓가지를 꽂으면서 굿청 같은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거기에다 흰 널판지를 슬쩍 끼워넣었다. 작가의 노림수는 작품에다 그림자, 즉 빛과 공기까지 아우르겠다는 것. 널판지가 ‘프레임’(뼈대) 구실을 한다는 게 요체다. 전시작 상당 부분은 헌 대들보와 기둥 등의 재활용품. 최근 1년간 중국에서 머물며 뜯긴 집에서 나온 부재를 한껏 썼다. 나무의 아우라(물질, 작품 특유의 분위기)에다 인간이 거주하면서 닿은 숨길까지 얹혀 이야기가 한결 깊어졌다. 예를 들어 옛 들보를 이용한 작품을 보면, 나무 나이 백년에 들보 나이 백년을 합쳤다. 연결 부위의 한쪽을 살림으로써 목수의 손길까지 빌려왔다. 한쪽은 비스듬히, 또 다른 쪽은 각지게 깎아 외받침대를 괴고, 댓가지를 꽂으면서 풍어제를 위해 띄운 배 형상이 됐다. 화가 이우환은 “겉만 고급이지 밑바닥은 천진난만 장난꾸러기”라고 말한다.

청나라 때 만든 식탁에는 한 가운데 숯불 구멍을 뚫고 공기 바람을 잡아 넣었다. 그래서 길쭉하게 부푼 비닐 봉지가 불끈 솟은 탁자 앞에서 작가는 “남들은 콘돔 같다고 재미있어 한다”며 껄껄 웃었다. 돌확 또는 돌방아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가운데 고인 물에 하늘이 내려 앉았다. 그림자에 이어 바람을 잡고 하늘까지 끌어안은 셈이니, 예순을 한참 넘은 나이에 욕심스런 천진함이다.

나무 기둥 네 개를 꼬치처럼 꿴 작품에서는 기시감(처음 보는 사물을 이전에 본 것처럼 느낌)이 진하다. 사모관대를 쓴 동구 밖 벅수·장승? 질끈 틀어올려 꽂은 여인의 비녀? 아니면 두릅나물을 꿰어 부친 부침개? 서양인들이 심씨의 작품에 ‘환장’하는 통에 12년 동안 국내 전시를 못한 까닭이 이해될 법도 하다.

“심 화백 작품이 부드러워졌어요. 혹시 연애하는 것 아니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화랑 주인이 한마디 던졌단다. 25일까지. (02)734-6111, (02)739-4937.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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