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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부투소프 연출 연극 ‘갈매기’

등록 2008-11-11 19:40

무대 ‘세기말 컨셉트’ 충격적
결말 작위적 인상은 보완 필요
색다르고 공격적이다. 러시아 극작가 체호프의 작품은 최근 꾸준히 현대화하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감상과 장식을 걷어낸 유리 부투소프 연출의 연극 <갈매기>(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는 충격적이다. 허물어질 것처럼 골격만 남은 거대한 건물에 뭉크라도 흉내 낸 듯 어지러운 낙서, 저마다 다른 모양의 볼품 없는 의자와 테이블, 천장엔 히치콕의 영화 <새>에서 금방 빠져나온 듯 수십 마리의 갈매기가 불길한 모습으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

세상에 종말이 오면 이런 모습일까. 2003년 <보이체크>로 내한했던 부투소프는 그때도 금속의 비계와 가파르게 경사진 무대로 세상의 폭력성을 경고했었다. 그런데 그 위기 의식은 <갈매기>에도 여전하여, 인생의 무의미함을 노골적으로 황량하게 드러낸다(무대 미술은 이번에도 그의 단짝 알렉산드르 쉬시킨이 맡고 있다).

폐허의 세상에서 배우들은 가볍다. 내면의 절망을 표현하는 대신 그들이 선택한 전략은 서커스 광대의 방식이다. 천박한 염색 가발을 쓴 중년의 아르까지나(정재은 연기)는 쇼걸처럼 춤추고, 그녀의 연인은 붉은색 물방울 셔츠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통에 훌륭한 소설가가 아니라 기둥서방 같다. 기성 세대를 거부하며 젊은 주인공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연극은 유치하기 짝이 없고, 이루어지지 않는 그들의 사랑 역시 미성숙하긴 마찬가지다. 그뿐인가. 절망에 찬 등장인물들을 위해 연출가가 마련한 음향 효과는 무대 구석의 피아노를 배우들이 두드려대는 ‘젓가락행진곡’ 이고, 차례대로 배우들은 무대 앞에 설치된 마이크로 와서 연설한다.

의도적으로 조악하고 거리를 두도록 한 무대에 어떻게 몰입하겠는가. 인간이 가진 천박함과 우스꽝스러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무대는 처음엔 낯설고, 시간이 지나면서 곤혹스럽다 못해 모욕감까지 선사한다. 그러다 문득, 벌거숭이 상태의 삶의 실체와 직면한 듯 서늘하면서도 슬픈 비극적 인식을 제공한다. 극장이 세상의 축약도라는 말이 맞다면, 그 폐허의 무대와 광대짓은 지금 우리 세상에 대한 진단이기도 할 터. 극장이란 세상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은 호연했다. 최근 잦아진 외국 연출가와의 공동 작업에 익숙해지기도 했겠지만, 체호프에 대한 통념적 해석과 전혀 다른 시도였는데도 신인 배우들까지 유연하게 연출의 콘셉트를 소화했다. 그러나 새로운 콘셉트로 강력한 인상을 주던 전반부에 비해 후막으로 갈수록 연극의 힘이 떨어진다. 특히 주인공 트레플례프(김태우 연기)의 자살은 결정적인 장면이건만 제대로 구축되지 못해, 느닷없고 작위적인 인상을 준다. 조율 작업이 한번쯤 더 필요해 보인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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