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차이콥스키 음악은 러시아다

등록 2008-11-13 18:50

상트페테르부르크 필 내한공연
누가 차이콥스키의 작품 성향을 설명하면서 ‘서구적’이란 수식어를 사용하는가.

12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은 이 작곡가의 음악적 정체성이 러시아의 광활한 토양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음을 온전히 증명해 주는 자리였다. 그들이 펼쳐내는 차이콥스키 음악은 험한 눈보라 흩날리는 시베리아 설원이었고, 찬란한 영화의 흔적을 간직한 네바 강 줄기였으며, 가지마다 통절한 우수가 허옇게 응결되어 있는 자작나무 숲길이었다.

백전노장의 원로 단원들로 구성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의 연주는 실로 품격 높았다. 그들이 빚어내는 음 마디마디에서는 동구권 오케스트라 특유의 짙은 개성과 120년 넘는 역사로 대변되는 오랜 전통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질박한 감촉의 현악 파트, 서늘한 빛깔의 목관 파트가 굵직하니 일품이었고, 무엇보다 쩌렁쩌렁 우람한 울림으로 그르렁거리는 금관 파트가 단연 돋보였다. 올해로 칠순을 맞이한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꼿꼿한 자세와 절도 있는 손동작으로 이들 악기군을 하나의 일사불란한 앙상블로 엮어내면서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첫 번째 곡인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이즈’는 시원스레 화려하였으며, 다음 순서로 공연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러시아 피아니즘의 마력을 실감케 하는 열연이었다. 엄청난 파워와 강철같은 기교로 무장한 데니스 마추예프의 열 손가락은 건반을 신속하게 장악하며 시종일관 뜨거운 전류를 방사하였다. 그의 심장은 내려찍는 옥타브와 아찔하게 몰아치는 속주로 표현되었고, 그의 머리는 서정적 선율을 음미할 줄 아는 자제력으로 대변되었다. 음악의 강약은 대단히 낙차가 크면서도 기복이 풍부하였다. 테미르카노프의 관현악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독주자와 호흡을 맞추었다. 곡이 끝난 뒤 재차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산왕의 궁전에서’를 폭발적으로 연주하여 청중들의 환호성에 답하였다.

2부에서 공연된 차이콥스키 오페라의 아리아 네 편은 관현악 반주가 매우 수려한데 반해 남녀 성악가의 평범한 가창이 상대적으로 밀리는 감이 있어 아쉬움을 남겼다. 허나 마지막으로 공연된 <1812년> 서곡이 이내 그 생각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웅장한 스케일과 역동적 전개력을 고루 갖춘 이날 콘서트의 절정으로 금관 부대가 벌떡 일어서서 연주하는 통쾌한 피날레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앙코르로 발레음악 <호두까기인형> 중 ‘트레팍’이 선사되었다.

글 이영진/고전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