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평야 농부 김씨의 한평생’ 전
“징게맹게 외배밋들에서 평생을 산 이 내 농투성이 야그를 들어불라요?”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지난 19일 개막한 ‘호남평야 농부 김씨의 한평생’(12월22일까지) 전은 전시 제목 그대로다. 네살 때 전북 동진농장 소작인으로 들어간 부모 짐 보따리에 얹혀 이주한 김아무개(84)씨의 이야기를 뼈대로 재구성한 ‘징게뜰 농부’의 팔십 평생이 펼쳐진다.
김씨가 사는 전북 김제시 광활면은 1949년에 진봉면에서 갈라져 나왔다. 1928년 일본인 아베 후사지로가 세운 동진농장주식회사가 10km 방조제를 쌓아 만든 1500정보의 땅이다.
김씨네는 수숫대궁 흙벽의 단칸 초가집에 이주했다. 결혼을 한데다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박혔기에 가능했다. 다섯 집이 한 조를 이루어 답구장의 감시 아래 짠물 덜 빠진 땅에서 나락을 심고 가꿨다. 수확의 반은 농장이 가져갔고, 나머지 반에서 비료값, 물값을 빼면 남는 것은 별로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식수였다. 수로를 타고 온 농업 용수를 길어다 걸러 마셨다. 그래서 공립학교 다닐 때는 고래실 아이들한테서 ‘똘물 먹는 애’라는 놀림을 받았다. 해방되면서 소작하던 땅을 유상 분배 받아 땅주인이 됐지만 1952년 제방이 터지면서 거지 신세가 됐다. 제방 재건은 워낙 큰 공사라 돈이 많이 들어갔다. 나라에서 관리해 달라며 서울로 원정 데모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이들 잘 키워 출가시키고 양로원에서 소일한다. 농사에 골병 들어 봉지약을 대놓고 먹는다. 병 소주를 대놓고, 화투 놀이가 고작.
전시장은 김씨 집안의 살림살이를 난짝 옮겨놓은 듯 시간에 얽힌 사연들이 배어 있다. 방조제 축조 사진, 창씨 개명한 공립학교 때 졸업앨범, 배 부른 물항아리, 버선본, 재봉틀 등 살림살이와 맷방석, 리어카, 무자위, 탈곡기, 경운기 등 농기구, 삼발이 자전거, ‘왕자파스’, 검정색 교복 등의 자녀 용품들이 시대 또는 시절순으로 배열돼 있다. 그밖에 요즘 먹는 약봉지, 화투, 소주 페트병, 자장면집 번호가 적힌 목침 등도 눈에 띈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정 학예사는 “시골 마을 촌로가 들려주는 평범한 삶 이야기를 재구성했다”면서 “이름 없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현대사를 만든 분들이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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