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요동횡단기’전
같은 목판화이면서도 전혀 다른 효과를 내는 두 판화가의 전시가 열린다. 김억씨의 ‘목판요동횡단기’와 배남경씨의 개인전. 김씨는 칼칼한 칼맛을 살려 검정 유성잉크로 단판에 찍는 한국화 같다. 반면 배씨는 뭉근한 칼을 쓰는데다 제판을 거듭하면서 여러 색을 써서 회화 같은 느낌이다.
흑백단판 칼칼한 칼맛
■ ‘목판요동횡단기’전
작가 김씨는 지난 6월 고구려 자취를 찾아 중국 만주를 답사했다. 백두산과 천리장성 유적지인 요동성·백암성과 첫 도읍터인 환인의 오녀산성, 집안현의 국내성, 태왕릉·장군총 등을 돌아보았다. 그 뒤 경기도 안성 작업실에 틀어박혀 칼과 씨름한 결과물이 이번 출품작들. 전시 직전 작업인 수원 화성 풍경처럼 ‘다시점’ 방식을 쓴 게 특징. 기다란 풍경을 화폭에 옮기려니 작가가 옮겨 다니며 잡아온 것을 녹여넣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 두루마리에 그린 옛 기록화와 비슷하다. 단순 풍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기에 적절하다.
봉황산성, 장백폭포 등을 담은 판화들은 가로 또는 세로로 길다. 인공 산성과 험한 산세가 한국화의 준법을 펼치기에 제격. 바위는 길죽길죽, 나무는 몽글몽글 칼맛을 살려 붓그림처럼 뽑아냈다. 고구려인의 기상을 녹이고 승용차, 관광객 등에 얽힌 현대의 이야기를 버무려 보는 재미에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다음 목표는 북한에 있는 유적. 6일부터 24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김내현화랑. (031)963-3262.
회화 분위기의 뭉근한 맛
■ 배남경 개인전
2007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지명공모 수상작가전. 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판화로써 회화를 그린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사진 찍어 스케치를 대신하고 이를 목판에 옮긴다. 이미지를 파고 없애는 3단계 제판을 하고 단계마다 먹 또는 한국화 물감으로 3~5차례 인쇄해 결국 9~15단계의 명암을 낸다. 두툼하게 색 오른 작품에서는 사진·회화·판화의 맛이 두루 난다. 처음 수십 장으로 시작하지만 끝에 가서는 한두 장을 건질 뿐이다. ‘미련한’ 방식이어서 작품들은 대부분 에디션이 없다. 최근 부분적으로 래커칠을 해서 오프셋 비슷한 효과를 내거나 콜라주 기법을 쓰는 등 나름 ‘진화’했다고 한다.
진경·희원 언니, 어머니, 선생님 등 작가와 인연이 각별한 인물이나 아파트, 마을버스 등의 사소한 주변 풍경이 대상. 색이 쌓인 탓에 오래 노출돼 타버린 필름을 인화한 느낌. 나뭇결이 은근히 배어나면서 기억에서 끄집어낸 초현실 같기도 하다. 12일까지 서울 순화동 갤러리북. (02)751-9634.
임종업 선임기자
배남경 개인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