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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27살의 ‘아름다운 청년’ “클래식의 마법 느껴봐”

등록 2008-12-07 21:02수정 2008-12-07 22:20

구스타보 두다멜(27)
구스타보 두다멜(27)
베네수엘라 지휘자 두다멜 첫 내한연주회
빈민 예술교육 ‘엘 시스테마’ 출신
“전세계 클래식 전파가 나의 사명
연주마다 라틴 정신 전달하고파”

2006년 9월 이탈리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홀에서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티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그들의 열성 후원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75·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의 지휘로 연주회를 열었다.

아바도는 전반부 프로그램인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이 끝나고 2부 프로그램인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지휘하려고 박수 속에 포디엄(지휘대)에 올랐다. 그는 환호하는 청중들에게 답례한 후 갑자기 객석의 한 청년에게 지휘봉을 건넸다. 곱쓸머리의 그 청년은 이 베네수엘라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인 구스타보 두다멜(27)이었다. 아름다운 청년 마에스트로 구스타보 두다멜과 그의 분신인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12월14~15일 첫 한국 연주회를 연다.

내년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포디엄에 서게 될 두다멜은 세계 클래식계를 이끌 차세대 지휘자의 선두주자로 손꼽힌다. 그와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자 오르가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69) 박사가 1975년 범죄와 마약의 유혹에 빠진 빈민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청소년 예술교육 시스템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일궈낸 클래식 음악의 기적이다. 그는 미취학 아이 7명을 브레우가 지하 주차장에 모아놓고 낡은 악기를 쥐어주며 “우리가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용기를 불어넣었다. ‘베네수엘라 청소년과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국립 시스템’(The Fundacin del Estado para el Sistema de Orquesta Juvenil e Infantil de Venezuela)이라고 불리는 엘 시스테마의 출발이었다.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이 도둑질과 총질을 배우는 동안 엘 시스테마의 ‘플레이 앤드 파이트’ 이념 아래에서 베토벤과 브람스를 연습하며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감동시킨 마법의 순간을 준비해왔다.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53)은 엘 시스테마에 대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세계 음악계의 미래를 이들 안에서 본다. 단지 음악과 관련해서가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잠재력의 프로그램이고 이미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으며 앞으로 속해서 바꿔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만 아니라, 관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젊은 세대를 클래식 음악으로 데려오는 것은 예술가로서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클래식 음악을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 가져가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그의 새로운 오케스트라와 함께 리게티와 모차르트, 그리고 슈트라우스의 레퍼토리로 특별 연주회를 열고 있는 그가 메일을 보내왔다.

그는 “한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첫 인상들을 만든다는 것이 기대가 된다”며 “한국 관객들을 만나고 도시를 경험하는 것이 저를 흥분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겸 예술감독 곽승(67)씨가 1992년부터 해마다 베네수엘라를 방문해서 엘 시스테마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지휘 마스터 코스’의 수강생이 바로 두다멜이다.

두다멜을 키워낸 ‘엘 시스테마’의 성공비법이 궁금했다.

“제가 하는 일은 아름다운 책임이에요.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한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것이 비밀이고, 또 이것이 비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엘 시스테마의 아이들이 성장해서 전세계의 젊은이들의 삶 속에 힘이 되는 것을 보고 싶다. 정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그는 아시아 데뷔무대로 중국 베이징 연주회(12월11~12일)에 이어 14일 오후 3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벌이는 첫 연주회에서는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의 고전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중 ‘심포니 댄스’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1번 ‘거인’>을 선택했다. 15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는 마우리스 라벨(1875~1937)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남미 작곡가 카스테야노스의 <파카이리구아의 성스러운 십자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들려준다.

그는 연주회 레퍼토리에 대해서 “제 생각에는 저의 모든 차이코프스키, 말러, 모차르트, 브람스 안에는 베네수엘라와 라틴 정신이 조금씩 다 들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저는 관객과 오케스트라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라틴 작곡가들이 우리 프로그램에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음악을 만드느냐는 것이죠. 그것을 즐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법과 같은 순간들을 만들고, 우리가 연주하는 모든 공연마다 마법과 같은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우리 공연을 이런 방식으로 기획하는 이유예요.”

그는 “과대 포장된 광고나 리뷰 등에 의해 우리를 판단하지 말고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어보면 음악을 원초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1981년 베네수엘라의 중서부 메리다 산맥에 위치한 라라주의 가난한 도시 바르키시메토에서 클럽의 살사 트럼본 연주자인 아버지와 성악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자란 고향은 주민 75%가 빈곤층으로 각종 범죄와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었다. 그는 6살 무렵 인형들을 오케스트라처럼 세워놓고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지휘하며 놀이처럼 지휘를 즐겼다. 그러다 10살에 엘 시스테마의 지역학교에 들어가 바이올린을 배웠고, 15살 때부터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로부터 지휘를 배우기 시작해 18살에는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영재 연주자 집단인 시몬 볼리바르 유스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됐다.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그는 “음악이 나의 삶을 바꾸었다. 어릴 적 음악을 하지 않았던 내 주변 남자 아이들은 결국 범죄와 마약에 빠져 들었다”고 지난날을 털어놓았다.

2006년 스웨덴 예테보리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로 발탁된 두다멜은 베를린필, 시카고 심포니, 뉴욕필, 필하모니아 등 세계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으며, 올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대표 데보라 보다로부터 “2009~2010 시즌에 에사 페카 살로넨(50)의 뒤를 이어 음악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주빈 메타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등이 거쳐 간 미국 정상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제 3세계 청년 음악가가 맡는 것은 클래식계에서는 파격적인 사건이다.

사이먼 래틀은 그를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주목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고,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최근에 들어본 지휘자 중 가장 뛰어난 지휘자 중 한 명이다”이라고 평가했다.

두다멜은 2006년 세계적인 음반사인 ‘도이치 그라모폰’사와 전격 계약하며 베네수엘라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인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교향곡 7번>을 내 놓았다. 20대 중반의 지휘자가 데뷔앨범으로 이미 수많은 대가들이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을 선택한 것부터가 놀라운 모험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66·슈타츠카펠레 베를린 종신수석지휘자)는 이 음반을 두고 “최근에 나온 베토벤 교향곡 5, 7번 중 최고”라고 극찬했다. 두다멜과 그의 오케스트라는 2007년에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을 녹음했고, 올해는 <피에스타>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연주음반을 내놓았다.

현재 베네수엘라가 국가 차원에서 빈민층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악기를 제공하고, 음악을 가르쳐주는 엘 시스테마 프로그램에서는 2~18살 어린이와 청소년 25만명이 200개가 넘는 전국의 누클레오(지역센터)에서 매일 4시간 이상 음악 연습을 하고 순회공연을 한다. 지난 30여년간 엘 시스테마 음악학교를 거친 아이는 40만명이 넘으며, 엘 시스테마의 어린이 오케스트라는 90여개,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130여개나 된다.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우리의 첫 번째 목적은 아이들을 전문 연주자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범죄와 마약에서 구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베를린필 하모닉오케스트라의 최연소 단원이 된 더블베이스 연주자 에딕슨 루이스(23)도 “엘 시스테마는 구원과 변화를 뜻한다”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베네수엘라 오케스트라와 연주가들의 공연은 항상 세계 음악계의 관심을 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베네수엘라를 방문하려고 일부러 투어 연주회 일정을 늘려서 몇주 동안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시연과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주빈 메타(72), 세계적인 성악가 플리시도 도밍고(67), 지금은 고인이 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주세페 시노폴리(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 음악감독) 등이 베네수엘라 앙상블에 참여하곤 했다.

1975년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베네수엘라 출신 라틴아메리카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내세워 만든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와 두다멜은 베네수엘라 문화 아이콘을 넘어 제3세계의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불어넣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000년 브라질에서 열린 남미 국가원수 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를 동행시키기도 했다.

두다멜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최고의 순간은 아브레우가 유스 오케스트라를 맡으라고 했을 때”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정도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에 보내는 애정은 남다르다.

“이 연주자들은 내 핏줄, 내 형제자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와 같습니다. 그들은 나를 지휘자로 보지 않고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그는 이 오케스트라와 리허설을 할 때 “이렇게 해라” 대신에 “같이 해보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한편 14일 연주회에서는 부산소년의집 오케스트라 단원 70여명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하는 ‘예술꽃 씨앗학교’ 학생 20여명이 초청된다. 예술꽃 씨앗학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문화예술교육에 힘써 온 전국 10개초등학교를 정해 4년 간 매년 1억원을 집중 지원하는 곳이다. 공연에 초청되는 90여명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베네수엘라 문화예술교육의 결실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된다. 또 15일 성남아트센터에서는 공연 전에 예술강사와 음악교사, 문화예술교육 관계자들을 초청해 ‘문화예술교육, 예술꽃을 피우다’라는 주제로 엘 시스테마의 창시자인 아브레우 박사의 강연이 있을 예정이다. 1577-526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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