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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촛불…대운하…싱싱한 현실비판

등록 2008-12-23 18:04수정 2008-12-23 19:25

연극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제목도 길어라. 그런데 제목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창작극이 초연 후 종적을 감추는 기이한 한국 연극계의 풍토에서,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홀로 걷는 이 마음>(이하 밤비)은 공연의 역사까지 제법 길다. 최근 맹렬하게 작품을 쏟아내는 최치언의 희곡으로, 2003년 우진창작상을 받은 뒤 지방 극단의 초연, 2007년 김동현 연출의 재공연에 이어 다시 이성열 연출로 탈바꿈하였다(12월28일까지, 연우소극장).

더 놀라운 것은 과거를 결산하던, 그리하여 다소 구태의연해 보였던 작품이 촛불정국과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라는 살아 있는 혼란을 포착하며 현재진행형으로 싱싱하게 변모한 것이다.

원작의 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인 연두식(박수영 연기)이 우연히 비 내리는 영동교를 산책하다 운 나쁘게 그곳에서 접선을 주도하던 반정부 운동단체의 얼굴 없는 연두식으로 오인돼, 취조 과정에서 가짜 연두식이 되어간다는 설정이다.

그동안 최치언의 작품에서 자주 확인된 바지만, 작가의 역사인식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역사는 오해와 폭력이 빚어낸 불합리한 해프닝이며, 그 혼란은 삶의 도처에 편재하기에 반복과 과잉의 극작술을 구사한다. 취조실의 강요된 오해가 잘못 연결된 전화 한 통을 매개로 군부대의 폭력과 중첩되고, 영동교나 또다른 장소로도 변주되는 식이다.

연출은 주제는 명료하나 극작술은 의도적으로 방만한 작품을 패턴의 공간으로 시각화했다. 또 만화경 같은 다양한 상황을 희극적 캐릭터로 눙치고 다양한 연극적 오브제들로 촛불정국까지 망라하는 한국의 현대사에 지적인 각주를 달았다.

특히 물과 불의 오브제가 인상적이다. 뒷벽을 장식하던 영동교, 취조실의 물고문용 욕조, 객석까지 퍼붓던 오줌발이 한 축을 형성하면 그 반대편에 총기나 촛불 혹은 석유통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마치 한국 사회가 물과 불이라는 상극의 대립만 일삼고 있다는 듯. 게다가 역사는 반복되어 과거 한강의 기적은 이제 한반도 대운하의 꿈으로 이어지고 화염병은 촛불정국으로 이어진다는 촌철살인의 각주.

그러고 보니 저 시끌벅적한 연극처럼 2008년은 요란한 해였다. 그러나 현실의 혼탁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연극계는 현대극 100주년을 맞아 모처럼 기염을 토했다. 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대극장 연극, 현실에 대해 문제적 발언을 재개한 연극정신의 회복, 그리고 한국 연극의 대들보인 소극장 연극의 꾸준한 시도와 노력.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이야기하자. 해피 뉴 이어! 2008년 한국 연극, 수고하셨습니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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