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지역여성 작품 새달 전시
2만년 전부터 대물림 ‘추상 미술’
춤추고 노래하며 땅에 손·발로 그려
땅과 인간 몸에 기억된 꿈 표출 자본주의 미술에 오염되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회화가 온다.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 속하는 심슨 사막 가장자리, 즉 소도시 앨리스 스프링스의 230km 북동쪽에 위치한 유토피아 지역 원주민 여성들의 회화 100여 점이 서울 공평동 공평아트스페이스에서 내년 1월7일부터 30일까지 전시된다. 2만년 전부터 대물림해 온 이들 회화에는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온 원주민들의 역사와 심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문자가 따로 없었던 탓에 춤, 노래와 함께 의식처럼 구전되어 온 게 특징. 하지만 원시미술로 폄하되기는커녕 칸딘스키, 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등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와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에밀리 캠 워아이(1910~1996)가 중심이 된 같은 혈족 22명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죽기 전 8년 동안 3천여 점을 그렸다는 에밀리는 지난 6월 일본 오사카 국민미술관과 도쿄국립미술관에서 유고전이 열려 12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 199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초청된 바 있다. 250개 언어 그룹 가운데 하나인 이들 원주민 작가들에게 현대식 캔버스가 도입된 것은 불과 20년 전인 1988년. 그 전에는 나무껍질, 땅거죽, 몸 위에 그렸다. 이들이 특별한 것은 토지 소유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관계가 있기 때문. 본디 ‘땅의 사유(私有)’라는 개념이 없던 그들의 땅이 모르는 사이 백인 소유로 바뀌어 있었다. 원주민들은 소송을 냈고 그 대금은 여성 작가들이 나무껍질에 그린 그림을 팔아서 댔다. 긴 소송 끝에 1979년 땅을 되찾으면서 여성 작가들의 진면목도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의 작품은 형태와 색깔에서 몇몇 스타일의 변주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한다. ‘꿈 꾸기’다. 그들이 4만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들의 땅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이렇게 부른다. 다시 말해 땅과 인간의 몸에 기억된 꿈을 표출하는 것이다. 땅과 몸의 미분화는 에밀리의 구멍 뚫린 코가 신성한 구멍 바위와 일치하고, 콧구멍에 끼운 ‘얌’(사막감자)의 씨앗인 캠이 그의 중간 이름인 점에서 드러난다. 이들 회화는 일종의 액션 페인팅. 땅거죽에 춤, 노래와 함께 손바닥, 발바닥으로 그려진 자취가 캔버스에 옮겨진 것. 그 탓에 끌린 자국이 고스란한데, 커다란 점의 연속인 선에는 합창의 리듬에 따른 몸의 추임새가 전해진다. 두손을 동시에 또는 번갈아 쓰면서, 수십년 동안 의식을 행하면서, 몸에 각인된 율동감과 추임새를 캔버스에 능숙하게 구현하기 때문. 실제로 이들은 그림에서 의식을 재현한다. 1992년 에밀리는 시드니갤러리의 자기 작품 앞에서 그림의 자취를 따라가며 궤적에 대응하는 입소리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전시를 기획한 시드니 크로스베이갤러리의 이승희 대표는 “20년 전 처음 원주민 회화를 접하고 나서 내 삶과 작품이 거짓임을 깨닫고 작품 활동을 접었다”며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건강성과 진정성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춤추고 노래하며 땅에 손·발로 그려
땅과 인간 몸에 기억된 꿈 표출 자본주의 미술에 오염되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회화가 온다.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 속하는 심슨 사막 가장자리, 즉 소도시 앨리스 스프링스의 230km 북동쪽에 위치한 유토피아 지역 원주민 여성들의 회화 100여 점이 서울 공평동 공평아트스페이스에서 내년 1월7일부터 30일까지 전시된다. 2만년 전부터 대물림해 온 이들 회화에는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온 원주민들의 역사와 심성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문자가 따로 없었던 탓에 춤, 노래와 함께 의식처럼 구전되어 온 게 특징. 하지만 원시미술로 폄하되기는커녕 칸딘스키, 빌렘 드 쿠닝, 마크 로스코 등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와 동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는 에밀리 캠 워아이(1910~1996)가 중심이 된 같은 혈족 22명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죽기 전 8년 동안 3천여 점을 그렸다는 에밀리는 지난 6월 일본 오사카 국민미술관과 도쿄국립미술관에서 유고전이 열려 12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 1997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초청된 바 있다. 250개 언어 그룹 가운데 하나인 이들 원주민 작가들에게 현대식 캔버스가 도입된 것은 불과 20년 전인 1988년. 그 전에는 나무껍질, 땅거죽, 몸 위에 그렸다. 이들이 특별한 것은 토지 소유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관계가 있기 때문. 본디 ‘땅의 사유(私有)’라는 개념이 없던 그들의 땅이 모르는 사이 백인 소유로 바뀌어 있었다. 원주민들은 소송을 냈고 그 대금은 여성 작가들이 나무껍질에 그린 그림을 팔아서 댔다. 긴 소송 끝에 1979년 땅을 되찾으면서 여성 작가들의 진면목도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의 작품은 형태와 색깔에서 몇몇 스타일의 변주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한다. ‘꿈 꾸기’다. 그들이 4만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들의 땅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이렇게 부른다. 다시 말해 땅과 인간의 몸에 기억된 꿈을 표출하는 것이다. 땅과 몸의 미분화는 에밀리의 구멍 뚫린 코가 신성한 구멍 바위와 일치하고, 콧구멍에 끼운 ‘얌’(사막감자)의 씨앗인 캠이 그의 중간 이름인 점에서 드러난다. 이들 회화는 일종의 액션 페인팅. 땅거죽에 춤, 노래와 함께 손바닥, 발바닥으로 그려진 자취가 캔버스에 옮겨진 것. 그 탓에 끌린 자국이 고스란한데, 커다란 점의 연속인 선에는 합창의 리듬에 따른 몸의 추임새가 전해진다. 두손을 동시에 또는 번갈아 쓰면서, 수십년 동안 의식을 행하면서, 몸에 각인된 율동감과 추임새를 캔버스에 능숙하게 구현하기 때문. 실제로 이들은 그림에서 의식을 재현한다. 1992년 에밀리는 시드니갤러리의 자기 작품 앞에서 그림의 자취를 따라가며 궤적에 대응하는 입소리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전시를 기획한 시드니 크로스베이갤러리의 이승희 대표는 “20년 전 처음 원주민 회화를 접하고 나서 내 삶과 작품이 거짓임을 깨닫고 작품 활동을 접었다”며 “작품 속에 들어 있는 건강성과 진정성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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