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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낡은 대합실에서 떠나는 사진여행

등록 2008-12-25 18:58수정 2008-12-25 21:47

옛 서울역사, 그리고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원로작가 이해선부터 북유럽 작가들까지
‘인간풍경’ 주제 작가 50명 350여점 전시

옛 서울역사가 고즈넉한 사진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이별과 상봉의 정한이 아직도 감도는 그곳에 들어서면 또다른 감성의 세계로 떠나갈 수 있다.

낡은 문을 밀치는 순간, ‘인간풍경’이란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제2회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SIPF·내년 1월15일까지) 전시장과 마주친다. 아치형 철골과 두어 아름 돌기둥이 만든 높다란 궁륭 아래 사진들이 손님처럼 다소곳하게 내걸렸다. 한국 32명(팀), 국외 12명 등 사진가 50여명의 작품 350여점이다.

100여년 전 낮은 한옥들이 엎드린 곳에 자리 잡아 근대의 위용을 뽐내온 역사. 들면날면하던 무수한 사람들과 매표소, 편의 시설들이 철수하고 텅 빈 공간에는 ‘근대성’이 가득 차 있다. 그곳에서 전통적 초상과 풍경화를 대체하며 또다른 근대의 상징물이 된 사진들을 만나는 것은 기이한 경험이다.

옛 서울역 건물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에선 두 가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내부를 완전히 철거한 대합실에서 100여년 전 근대로 들어간 뒤, 또 한번 사진 속의 정지된 시간으로 나아간다. 작품은 이지마 가오루의 <사카이 마키, 질 샌더를 입다>(위), 김인숙의 <토요일 밤>.
옛 서울역 건물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에선 두 가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내부를 완전히 철거한 대합실에서 100여년 전 근대로 들어간 뒤, 또 한번 사진 속의 정지된 시간으로 나아간다. 작품은 이지마 가오루의 <사카이 마키, 질 샌더를 입다>(위), 김인숙의 <토요일 밤>.
옛 역사는 틈입자들을 깊은 내면의 세계 또는 전혀 다른 시간대로 안내한다. 전시는 △자화상이나 일기처럼 자전적 얘기를 담은 ‘안을 바라보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사람과의 관계를 표현한 ‘타인을 느끼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 집중하는 ‘밖으로 나가다’ 등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국외 거주 한국 작가들과 아직은 낯선 북유럽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된 게 특징. 대가 위주로 늘 같은 사진이 반복되는 사진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페르소나와 마스크 경계선의 표정(정희승), 텔레비전 앞에서 혼과 분리된 사람들(뮌), 방금 혼이 떠나고 남은 인간의 껍질(최광호), 부모의 옛 사진에서 발견한 자신(윤은숙) 등 일상에서 잊고 사는 ‘나’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맨질한 바닥, 깨진 계단, 낡은 방들은 관객의 발자국을 삼키고, 구멍이 숭숭하고 벽지가 너덜너덜한 벽들은 사진을 빨아들여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듯한 환각을 부른다. 흥선대원군의 둘째형 흥완군의 증손 이해선의 흑백사진들. 수영을 즐기던 한강이나 물장구치던 홍은동 계곡, 꼬방동네 창신동의 사진 등이 잊었던 과거로 관객들을 이끈다.

시간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가면 빌딩과 인파 속 섬 같은 이벤트 공간(채승우), 여정을 통조림처럼 만들어 놓은 공원(서영석), 우리 땅 위의 외국 땅인 동두천·매향리(송상희), 사랑과 탄생, 죽음의 공간인 침대(임선영) 등 익숙하지만 낯선 곳으로 안내된다. 서양 속 동양인 정체성(배찬효, 도로시 윤), 토요일 밤 호텔 방방마다 벗겨진 욕망(김인숙), 옷과 함께 무장을 해제한 해변의 사람들(이일우), 스타크래프트 게임경기장에 선 복서 지망생(박현두), 한국 체류 외국인들 속에서 발견하는 표류객 하멜(김옥선) 등과도 마주치게 된다.

성남훈의 비디오 영상은 서울역이 또다른 역임을 환기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노숙자들의 역. 입장료 4천~8천원. (02)2269-2613.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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