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울고 있는 저 여자>, <결혼>
초반 판타지 아이디어 좋지만
무리한 결말 끌어내기 아쉬워
무리한 결말 끌어내기 아쉬워
뮤지컬은 그 기원부터가 돈 되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고, 현재도 무대 장르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외부 도움 없이 티켓을 팔아 ‘큰돈’을 버는 장르다. 하지만 소극장 뮤지컬은 조금 다른 얘기다. 100석도 안 되는 극장에서 티켓 팔아 돈을 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관심이 간다. 왜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올리는 걸까.
서울 혜화동 게릴라 극장에서 막 상연을 시작한 <울고 있는 저 여자>(왼쪽)(내년 1월25일까지)의 경우는 첫 번째 목표가 돈은 아닌 듯하다. 팸플릿에도 쓰였듯이 이 작품은 젊은 작가와 연출가, 배우들에게 뮤지컬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는 게 우선 목표다. 그 때문에 사춘기 소녀의 울음 섞인 일기장 같은 투덜거림과 허망한 결말, 어색한 노래 장면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한 번 해봤다는 의미라면, 공연할 수 있다.
반면 서울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상연 중인 <결혼>(오른쪽)(내년 2월28일까지)은 절박하다. 극장의 존립이 위협받는 마당인지라 이 뮤지컬은 흥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동안 창고극장에서 어떤 공연을 해왔건 <결혼>의 목표는 흥행이다. 하지만 여의치는 않다. 일단 이강백 작가의 희곡 <결혼>은 좋은 선택이었다. 옛날 텍스트지만 이 단막극은 사랑은 물론 그 상대방의 선택에 대한 명쾌한 풍자를 담고 있기에 지금도 유효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작곡과 연출을 겸한 정대경은 안타깝게도 달콤함과 시큼함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게다가 절반 넘는 노래 장면이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방백’ 이나 ‘독백’이기에, 노래 부르는 동안은 이야기 진행보다 졸음의 유혹이 더 크다. 이왕 뮤지컬로 각색한 마당에, 여주인공 ‘덤’을 사기꾼을 감동·감화시키는 순수한 캐릭터로 만들기보다 그녀에게도 영악함을 덤으로 얹어주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그콘서트를 따르기보다 두 주인공을 좀 더 아기자기하게 다듬는다면 명동의 데이트 커플들이 삼일로 극장 앞에 줄 서는 것도 먼 이야기는 아니다.
뮤지컬로서 <결혼>과 <울고 있는 저 여자>는 묘하게도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 공간은 판타지건만 판타지를 만들어낸 아이디어가 버티는 것은 초반 30분으로 바닥나고, 그 이후는 결말을 내기 위한 무리한 ‘현실’만 남는다. 게다가 둘 모두 ‘송 모멘트’가 매우 어색하다. 소극장 뮤지컬을 찾을 때는 화려함보다 아이디어와 그 작품 아니면 안 된다는 작가들의 절박함을 기대하게 된다. 두 뮤지컬은 그 ‘절박함’이 없다.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으니 기대해야 하는 것은 ‘뒷심’일까? 이수진/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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