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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박상륭 소설 원작 연극 ‘남도’

등록 2009-01-06 18:52

어설픈 사투리 연기 아쉬웠지만
곱고 애달픈 이별장면 연출 훌륭
소설의 연극화가 드문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박상륭의 소설은 그중에서도 연극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 왔다. 70~80년대의 대학 연극이나 창작극을 고집했던 연우무대가 시대에 대한 논평을 황석영의 소설을 극화하며 얻었다면, 이후의 세대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부딪히기 위해 박상륭 소설을 펼쳐 드는 눈치다. 그 계보에 멀리는 이윤택, 가깝게는 김광보와 박정희를, 그리고 최근에 <남도>를 발표한 박정석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박정석의 <남도>는 단아하고 서정적이다. 선배 연극인들이 연극적 무대로 승부하면서, 원작의 문학성과 연극성을 충돌시켜 화려한 맞불을 놓고자 한 것과는 다른 시도다. 대신 작가의 언어를 충실하게 재현한다. <남도>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독한 사투리고, 내장이라도 긁어대듯 결핍에 시달리는 삶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독하고 아픈 언어다. 노년의 쓸쓸한 주억거림이며, 떠나간 사랑을 잊지 못하는 회한의 언어다.

작품은 고독에 겨워 목숨을 끊는 주막의 노파와 그 노파를 사랑했던 늙은 사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극은 비가 오는 밤, 사공이 죽어간 노파를 기억하면서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물이 많은 연극이다. 술과 바다와 비가 어우러진 작품. 주모가 술잔으로 건네고 사공이 나룻배를 띄우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 물은 욕망의 물이고 ‘레테의 강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강)이고 세상을 씻고 달래는 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물은 달과 최고의 궁합을 이룬다. 차고 기우는 달이야말로 여성의 상징이고 죽음과 생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박정석의 무대는 그런 상징만으로 구성되었다. 주모와 사공을 비유하듯 뒷벽에 비치는 달과 빈 무대에 부려진 나룻배 한 척, 주막을 상징하는 등불 하나가 무대 장치의 전부다.

볼거리를 상징으로 최소화한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언어를 육화하는 배우와 정교한 디테일이다. 그런 점에서 작품의 전반부는 미진했다. 객석에 제대로 와닿지 않는 어설픈 사투리가 한몫 했고, 과거와 현재, 또 서사와 극을 넘나드는 다양한 층위를 소화하기엔 평면적인 연출, 노인 역을 맡기엔 아직 젊은 배우들의 작위적 호흡도 밀도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사공이 죽은 노파를 바다 아래 수장시키는 후반부에 가면 연극은 안정감 있게 제자리를 잡는다. 잘 들리지 않는 사투리 속에 방만하게 흩어져 있던 이야기는 나룻배 위에서의 곱고 애달픈 이별 장면으로 담담히 수렴되면서, 쓸쓸하고 나약한 모든 존재에 대해 애틋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살아 숨쉬는 우리 모두, 참 불쌍도 해라.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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