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해체 빗대어 한국사회 비판
극사실-부조리함 능청스레 섞어
극사실-부조리함 능청스레 섞어
다행히 놀라지는 않았다. 제목부터 <너무 놀라지 마라>라고 엄포를 놓으니 놀라지 않으려 각오했고, 연극적 설정도 박근형과 극단 골목길 특유의 여전함이 있었다.
가령 밑바닥 인생이나 남루한 공간 같은 것. 심지어 이번 작품은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하면서도 박근형 식의 조악함을 고집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산울림의 정갈한 벽돌 벽을 배경으로, 임시 막사처럼 거친 뼈대가 돌출된 남루한 무대를 목도하게 된다. 그 광경은 한평생 연극의 품위를 고집해 온 임영웅 선생의 산울림과 가부장적 권위를 신랄하게 부수는 박근형표 무대가 부딪치면서도 공존한다는, 특별한 감흥을 주기도 한다.
박근형 식의 소재나 캐릭터도 여전하다. 가부장주의의 윤리가 실종된 가족, 책임은커녕 그들은 막말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아버지가 자살했는데도 태연하다. 가족의 해체에 빗대어 한국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능청도 여전하고, 그 부도덕한 부조리함이 우리들의 리얼리티인양 극사실과 부조리함을 뒤섞는 자유로움도 여전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 공연은 여전하면서도 무언가 위협적일 정도로 달라졌다는, 기이한 인상을 준다.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기존 작품들에 비해 매끄러운 완성도가 부족하기 때문인가. 혹은 노골적으로 후각을 자극하기 때문인가. 사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냄새다. 공연 내내 변비에 걸린 아들이 환풍기가 고장 난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아버지까지 그 화장실에서 목을 매고 죽는 통에 시체 썩는 냄새까지 추가된다. 화장실과 냄새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집요한지 공연 도중에 악취가 느껴질 정도다.
아마도 그 노골적인 끔찍함이 원인인 듯하다. 돌이켜보니 지난 몇 년간 박근형은 비판적 사유에 대중적 코드를 적당히 가미하여 부도덕한 현실을 희석하고 유희하게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제 부도덕한 세상을 더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안전판을 제거한 채, 변소간 같은 세상과 악취에 물든 사람들-심지어 자신까지 포함하여-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끔찍한 일이지만, 끔찍함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람을 생각하면 견디어야 한다는 생각과 빨리 악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복잡한 생각도 든다. 아마도 이런 필자에게 박근형은 <너무 복잡하게 살지 마라>라고 충고하지 않을까. 그래도 필자로선, 오랜만에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그의 작품과의 해후가 반갑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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