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감정 묘사하는 노래 달콤
무대 못채운 연출엔 2% 아쉬움
무대 못채운 연출엔 2% 아쉬움
국내에서 인기 있는 프랑스 뮤지컬들의 특징은 대체로 이야기 구조를 무시하고 대규모 댄스 앙상블을 갖추었으며, 대중적인 작곡가의 곡으로 무장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한 모던 발레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장르의 유럽 전통 춤과 어반 댄스를 결합한, 브로드웨이 스타일과 차별되는 안무를 선보여 신선함을 준다. 하지만 밖으로 보이는 형식만으로 프랑스 뮤지컬이 관객을 끌어들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겉만 화려한 뮤지컬들이 얼마나 많이 쓰러져 갔던가.
프랑스 뮤지컬은 잘 알려진 기존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줄거리를 탄탄하게 세우는 수고를 더는 대신 등장인물의 감정 설명에 더 큰 공을 들인다. <로미오와 줄리엣>(1월29일~2월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경우 이런 방법은 필연적이기조차 하다. 셰익스피어의 특징인 ‘한눈에 반했다’는 설정이 어떻게 해도 오늘날에는 이해받지 못할 바보짓이기 때문이다. 줄리엣과 로미오가 서로 만나기 전에 부르는 이중창 ‘사랑한다는 것’, 티발트가 자신의 호전적 성격을 태생적인 한계로 구분 짓는 ‘내 잘못이 아니야’, 로미오와 머큐쇼, 벤볼리오가 그들의 자만을 보여주는 ‘세상의 왕들’ 등이 그렇다. ‘그녀가 사랑에 빠졌네’는 사랑에 빠져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감행하겠다는 열여섯 줄리엣을 말리기는커녕 부추기는, 요즘이라면 도무지 이해 못할 행동을 서슴지 않는 유모를 위한 변명곡이기도 하다.
이들 대부분의 노래가 비록 합창이거나 삼중창이라 해도 그 내용은 매우 사적이며 관념적이다. 한국어로 불렀다면 ‘닭살’이 돋았을 내용이지만 번역으로 한 번 걸러지면서 낭만적인 프랑스어 발음에 얹혀 감미로움만 남는다. 노래가 이렇게 상황보다 감정에 치우치다 보니 채울 수 없는 무대의 빈 공간은 앙상블이 바쁘게 춤추며 메우느라 산만하기 그지없는 연출을 보여준다.
결국, 어떻게 해도 2%는 부족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부족함 자체도 매력이 되는 것은 무대 위에서 즐겁게 살아나가는 배우들 덕분이다. 하지만 이번 내한 공연의 티발트와 머큐쇼는 확실히 매력이 덜하다. 티발트의 근친상간적인 사랑이나 머큐쇼의 로미오에 대한 금단의 사랑이 단지 노래 한 곡의 가사로 부지불식간에 묻혀버려 안타깝다. 그렇지만 너무 진지한 비극이면 오히려 촌스러워지는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런 원작의 균형을 가볍게 유지하는 것도 결국은 그들, 배우들이다.
이수진/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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