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고시원 매개 ‘극의 원심력 구조’ 팽팽
삼십대 연극인들이 주축인 극단 이름이 신작로라니, 좀 시대착오적이지 않나?
그런데, 아마도 그것이 신작로가 구사하는 전법인가보다.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변화가 오히려 매너리즘이 된다면, 용도 폐기된 과거의 방식과 맞장 떠서 새 길을 내보겠다는 배짱 말이다. 그래서 바로 지난달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정공법으로 공연하며 호기를 부리더니, 이번엔 일상성에 토대를 둔 <우리 사이>(김덕수 작, 이영석 연출)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우리 사이>는 ‘88만원 세대’의 일상을 포착한 작품이다. 흔히 청춘 하면 눈부신 열정이나 경쾌한 감각을 떠올리지만, <우리 사이>를 만든 젊은 연극인들은 그 통념에 빠져들지 않는다. 대신 고시원에서 추리닝 차림으로 전망 없는 삶을 허비하는 희극적이고 시시한 청춘을 정직하게 잡아냈다.
작품은 개키다 만 옷처럼 아무렇게나 부려진 고시원을 무대 중심에 놓고, 그 공간을 감싼 사각의 세상을 오고 가면서 여덟 개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벽도 없이 사각 테두리에 갇힌 고시원 원룸은 섬처럼 보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는 말처럼 <우리 사이>는 고시원이라는 섬과 세상의 간극, 알다가도 모르겠고 다가가고 싶어도 좁혀지지 않는 여러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방황은 공간적으로는 고시원으로 수렴되는 구심력이 작동하지만, 시간적으로는 확산적인 원심력의 구조다. 작가는 아무 연결점 없이 그저 고시원 원룸을 매개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실종되는 삼십대 백수와 역시 그 대열에 끼어드는 이십대 백수로 작품을 열고 닫는다. 연출 역시 사람은 바뀌었지만 상황은 같은 식으로 앞뒤 장면을 흡사하게 연출했다. 덕분에 작품 속 방황은 어느 한 젊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시원을 거쳐 가는 모든 젊음으로 확산되며 두께를 확보한다. 그러나 일상성에 골몰하여 밀도를 떨어뜨리는 대사의 과잉이나 사실적 스타일과 연극적 스타일을 임의로 넘나드는 편의적 연출 방식은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우리 사이>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배우들의 음악 연주다. 처음엔 장면 전환용 음악 혹은 서툴러서 우스꽝스럽기만 하던 그 음악 연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 위 무력한 인물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위로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하여, 삼십대 중반 백수와 이십대 중반의 백수가 멜로디언과 기타를 연주하는 마지막 장면에 도달하면, 큰소리치지 않는 그 담담한 슬픔에 먹먹해진다. 어쩌자고 우리는 젊은 그대들에게 이런 세상을 주게 되었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3월8일까지 나온씨어터.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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