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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젊은 화가들 역삼동 빈집 털다

등록 2009-02-10 19:08수정 2009-02-10 20:24

서머피시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 앞줄 왼쪽부터 김태수, 필승, 노해율(전시 준비자). 뒷줄 왼쪽부터 김명화, 요니시 야스아키, 이정후, 어여름, 양은혜, 나얼, 정연수.
서머피시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 앞줄 왼쪽부터 김태수, 필승, 노해율(전시 준비자). 뒷줄 왼쪽부터 김명화, 요니시 야스아키, 이정후, 어여름, 양은혜, 나얼, 정연수.
서머피시 프로젝트 ‘하우스’전
트럭 이용 ‘게릴라 전시’ 경험
빈 주택으로 옮겨 ‘업그레이드’
신예작가 자존감·실험성 가득

테헤란로와 논현로가 마주치는 서울 역삼동 네거리. 유리 또는 화강암으로 마감한 사무실 빌딩들이 숲을 이룬다. 그 사이 뒷길에는 빌딩 근무자들을 위한 먹을거리, 서비스 업종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다. 거기서 다시 갈라져 들어가면 고급 주택가. 승용차가 겨우 비켜 가는 골목길은 비교적 한적하다.


(위)어여름의 <가득 찬 사랑>,  (아래)요니시 야스아키의 <그림 조각>.
(위)어여름의 <가득 찬 사랑>, (아래)요니시 야스아키의 <그림 조각>.
작은 정원이 딸린 2층 양옥집에서 화가들이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세 번째 서머피시 프로젝트인 ‘하우스’전이다. 김태수, 나얼, 양은혜, 어여름, 이정후, 정연수, 필승, 요니시 야스아키 등 서른 살 안팎의 젊은 작가 8명의 작품들이다. 서머피시는 ‘뜨거웠던 기억을 나눌 수 있는 작가’라는 뜻. 지난해 11월 시작해 주제를 바꿔가며 진행해 왔다. 층별로 큰 방 둘, 작은 방 하나에서 작가들이 벽 한두 개, 또는 일정 공간을 차지해 한 점에서 많게는 10여 점까지 걸었다. 특별히 도드라질 것도, 그렇다고 빠질 것도 없어 보인다. 칸막이 공간에 천장이 낮은 탓에 큰 작품은 없다.

하지만 이곳은 1년 전부터 비어 있던 곳. 한국은행 역삼지점에서 불과 300여m 떨어진 곳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정말 뜻밖이다. “우리는 빈 곳에 들어가 반짝 전시를 하고 철수합니다. 물론 주인의 사전 허락을 거치죠.” ‘전시 준비자’ 노해율씨의 말이다.

노씨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양 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는 조각가. 그는 굳이 기획자 또는 큐레이터라는 호칭을 피했다. 작가들에게 공간 비용 또는 기획이라는 틀을 전혀 지우지 않고 마음껏 작품을 내도록 했다. 빈집이라 공간 비용은 들지 않았고 약간의 홍보비도 협찬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작품은 좋지만 전시 기회가 마땅찮 았던 작가들이 흔쾌히 동참했다. 개인전을 한두 차례 연 신예 작가들이다. 내걸린 작품에서는 자존감과 실험성이 뚝뚝 묻어난다.

어여름 작가. 송곳 같은 빛이 검은 공간을 하트로 바꾸는 전작 애니메이션을 흰 봉제인형 시리즈에다 옮겼다. 양은혜씨의 투명 플라스틱 속 금붕어들은 ‘보호=족쇄’, 나아가 ‘선-악’의 모호한 경계를 표현했다. 영화, 명화 속 주인공, 또는 부시, 김정일 등 유명인들을 그린 김태수씨의 캐리커처에는 작가의 시니컬함도 들었다. 박스 종이, 문짝 등 우연히 얻은 재료에 콜라주, 낙서 등으로 신앙심을 표현한 나얼은 그룹 ‘브라운아이드 소울’의 보컬. 즐겨 부르는 아르앤비(R&B)의 즉흥성과 종교적 색채를 회화로 전환한 게 특징이다.


‘하우스’전이 열리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빈집.
‘하우스’전이 열리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빈집.
새댁 정연수씨는 두돌배기 아기의 입성을 실제 크기로 그렸다. 대상과의 관념적인 거리를 표현했다는 그는 장르를 달리한 비디오 작품도 냈다. 폐공장에서 짝으로 실어온 플라스틱 미니카로 샹들리에, 인형을 만들어 온 필승. 이번 신작은 소재를 달리해 고급 진열장 속 금 미니카, 초콜릿 미니카다. 쓸모없는 것들이 아름다움을 얻었다. 미아가 되면서 즐거운 놀이공간이 공포로 변했던 체험을 사진, 설치 등으로 옮겨 온 이정후씨. 신작 ‘규정할 수 없는 그림자’는 내면의 느낌을 공간으로 구체화했다.


요니시 야스아키. 글루건으로 흘려서 굳힌 실리콘 실로 방 하나를 채웠다. 보이지 않는 중력과 공간을 보이게는 물론 만질 수 있게 만들었다. 노해율씨와 입주 동기인 그는 한국 체류를 계기로 스타일 변화를 꾀하고 있다.


김태수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김태수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갤러리 초대는 무료지만 상업성 있는 작품만 골라 가고, 각종 지원기금에서는 일정한 틀에 맞는 것만을 요구해요. 대안공간들 역시 요즘 들어 특성을 잃고 상업화하고 있어요.” 참여 작가들은 이번 전시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작품을 마음껏 펼쳐 보이는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다.

준비자 노씨한테는 주말마다 벌인 ‘도시락 전시’ 경험이 있다. 동료 조각가들의 작품을 트럭에 싣고 돌아다니며 용산역 광장, 양재 시민의 숲 등에서 조마조마 게릴라 전시를 했던 것. 관리자가 오기 전에 작품을 후다닥 펼치고, 호루라기를 부는 그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얻는 시간은 대여섯 시간. 아침저녁으로 짐을 풀고 싸는 일이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기억이다. 이번 ‘스(squat·불법점거) 전시’는 ‘도시락 전시’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다음 장소로 찍어둔 곳은 곤지암, 혹은 압구정동의 빈 카페다. 주변 사람들한테 수소문하면 시내외에서 빈 공간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귀띔이다.

100%를 넘는 주택보급률, 깊이 모를 불황의 시대, 게다가 집권당은 ‘건설족’. 앞으로 빈 공간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돈 적고 재기 발랄한 작가들을 위한 ‘스 전시’를 하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겠는가. 전시는 13일까지.

글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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