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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리뷰] 직역투 대사가 주는 불편함 배우들 뛰어난 기량에 씻겨

등록 2009-02-17 18:22수정 2009-02-17 19:36

뮤지컬 ‘자나 돈트’
뮤지컬 ‘자나 돈트’
뮤지컬 ‘자나 돈트’
2003년 봄, 미국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이 뮤지컬이 막을 올리자마자 자나 역을 맡은 배우 제이 로드리게즈의 미모 때문에 여자들은 한탄을, 남자들은 분노를, 게이들은 환호를 내질렀다. 바로 그 화제작 <자나 돈트>가 2009년 2월, 서울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한국 공연에서는 초연 당시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연출과 안무를 맡았던 드버낸드 젠키가 직접 연출과 안무를 맡으면서 오프의 무대와 의상 콘셉트는 물론 극의 리듬까지 그대로 살려냈다. 또 뉴욕에서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곳까지 세심하게 반짝이를 붙여 무대는 한층 화려해졌다. 하지만 작품을 즐기려면 초반 약 30분 동안은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첫 장면을 메우는 ‘후스 갓 엑스트라 러브’는 자나가 누구인지, 뭘 하는지, 그곳이 어떤 세상인지를 설명하는, 꼭 필요한 노래건만, 지루하고 단조롭다. 게다가 길다. 더불어 중간중간 끼어드는 직역투 대사들은 끝까지 불편함을 안겨준다. 동성애가 정상이고 이성애가 비정상인 이 작품에 분노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관객도 없진 않을 듯하다. 하지만 유명 게이그룹 빌리지 피플의 ‘인 더 네이비’를 살짝 피처링한 ‘비 어 맨’이 등장하는 극중극에 이르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뀐다. 남자들끼리의 ‘자연스러운’ 키스 장면에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를 지르던 관객들도 그즈음 무대 위 세계에 익숙해진다. 게다가 바야흐로 ‘이성애’ 커플이 사랑할 권리를 주장하니 지지를 안 해 줄 수 없지 않은가.

물 만난 고기처럼 뛰노는 로버타 역의 김경선, 성량이 아쉽긴 해도 자나로 태어난 듯한 김호영 등 대부분의 배우들은 뉴욕 캐스트들을 뛰어넘는 기량을 보여준다. 뉴욕보다 훨씬 안정된 제작 환경을 비교해 볼 때 당연한 결과다. 체스 챔피언 마이크라는 인물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분홍 재킷에 뿔테안경을 쓴 그는 ‘이성애자’의 세계에서는 게이로 손가락질당하는 외톨이 괴짜였겠지만, 무대의 배경인 하트빌 고교에선 미식축구 주장보다 인기인이다.

<자나 돈트>는 또한 남성성과 여성성 자체까지 뒤흔든다. 여자들은 카우보이 놀이를 즐기고 남자들은 수줍어한다. 하지만 작품이 진짜 의미를 지니는 부분은 이런 뒤집기 놀이가 아니라 게이인 자나가 끝까지 주인공으로서 모든 인물들을 이끌고 돌보는 데 있다. 전통적으로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로부터 돌봄을 받는 역할이었지만 이 작품은 바로 그 뿌리를 뒤집는다. 그래서 유쾌하다. 3월31일까지.

이수진/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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