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지(오른쪽)씨가 극단 연습실에서 폴 역을 맡은 아들 조성덕씨, 실비아 역의 이지현씨와 함께 초연 당시의 공연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타이피스트’ 1969년 첫 공연 때
주인공 김금지 만삭으로 연기
태아였던 조성덕 이번에 주연
“추송웅 맡았던 역 잘해낼 것”
주인공 김금지 만삭으로 연기
태아였던 조성덕 이번에 주연
“추송웅 맡았던 역 잘해낼 것”
1969년 봄 서울 명동 소극장 카페 떼아뜨르에서는 극단 자유의 연극 <타이피스트>가 한국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당시 국립극단 프리마돈나로 최고 인기 여배우였던 김금지씨와 성격파 배우 추송웅(1941~1985)이 나선 이 2인극은 공전의 히트를 치며 1980년까지 장기 공연됐다.
공연 당시 김씨는 스물일곱 살. 남편 조순형(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씨와의 사이에 첫아들을 가진 상태였다. 그래서 12월 말까지 만삭의 몸을 헐렁한 옷으로 감추고 무대에 섰다. 이듬해 1월 출산했지만 팬들 성화에 못 이겨 그해 봄 또다시 무대에 올라야 했다.
어느덧 60대 후반이 된 김금지(67·극단 김금지 대표)씨가 자신의 추억이 어린 <타이피스트>의 국내 초연 40년을 기념해 3월4~11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작품을 다시 올린다. 초연 당시 여주인공 실비아 역을 맡았던 그는 물론 무대 뒤 제작자로만 참여한다. 흥미로운 건 남자 주인공 폴. 무대에 오르지 못한 김씨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아들 조성덕(39·극단 뉴메소드 대표)씨가 나섰다. 영국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한 둘째 딸 조소영(38)씨는 기획을 떠맡았다.
“이 작품을 공연하면서 첫째와 둘째를 낳았어요. 너무 인기가 있어서 임신 9개월 때까지 공연해야 했습니다. 당시 삼성물산에 근무하던 남편이 공연 때마다 데리러 오곤 했어요. 40년 전 공연 때는 뱃속에 있던 아들이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김씨는 “공연 첫해 12월 말 공연을 끝낸 뒤 김정옥 연출가가 관객들에게 ‘김금지씨가 출산 때문에 잠시 쉬겠다. 건강한 아기를 순산하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하자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울려퍼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듬해도 둘째 때문에 쉬게 되자 김 연출가께서 또 다시 관객들에게 같은 인사말을 전해 폭소가 터졌던 기억이 난다”고 웃음지었다.
아들 조씨는 “어렸을 때 집 거실에 추송웅 선생님과 어머니가 함께 타이프를 치는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며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졌던 추 선생님의 역을 맡아 부담도 되지만 도전하는 정신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건국대 영화예술과 강의교수인 그는 2006년 연극 <갈매기>에서 어머니 김씨와 함께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미국 극작가 머리 시스걸(83)이 쓴 <타이피스트>는 작은 우편 주문회사에 근무하는 두 남녀 타이피스트들의 직장 생활 20년을 비추면서 반복되는 일상과 무기력한 삶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극. 도시적 삶의 애환이 담긴 이 작품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공연에서는 연극 <동방의 햄릿> <귀환> <붓다 마이 바디> 등에서 신선한 감각을 내보여 주목됐던 젊은 연출가 원영오(39·극단 노뜰 대표)씨가 2인극 아닌 새 버전을 선보인다. 원 연출가는 “남녀 주인공 외에 코러스들이 시간과 세월의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배우들의 소리와 대사와 감정을 음악으로 전환하려는 실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금지씨는 “샐러리맨의 애환이 1시간20분 동안 함축된 비극적 코미디”라며 “대본 자체가 지금 이야기 같아서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는 국내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40년 전 김씨가 맡았던 실비아 역은 <노부인의 방문>에서 그와 함께 무대에 섰던 극단 노뜰의 간판 여배우 이지현씨가 맡는다. (02)747-4188.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한편, 40년 전 김씨가 맡았던 실비아 역은 <노부인의 방문>에서 그와 함께 무대에 섰던 극단 노뜰의 간판 여배우 이지현씨가 맡는다. (02)747-4188.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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